평범한 사람을 만나라고!(하)

그 평범한 사람 내가 만났구나

by 김호정

엄청 사랑해서 결혼했고, 엄청 갖고싶은 아기를 가졌는데, 낳고 보니 육아는 정말 인생의 그 어떤 고난 보다도 찰진 고난이었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기 때문에 육아보다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라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 나는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는 또 둘이나 낳았고, 첫째가 돌 때 쯤 정신적으로도 나아질만 했는데 둘째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안그래도 정신적으로 매말라 있는데 주말엔 더 바짝 매말랐었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행동만 거칠어져가는 나를 위해 남편은 주말 저녁 3시간의 외출을 선물로 주었고 나는 동네 스타벅스로 갔다.


나는 얼죽아다. 아메리카노는 내겐 조금 드세서 라떼를 마시는데, 육아를 시작한 후로는 카페인 뿐 아니라 당도 필요해서 늘 바닐라라떼를 마신다. 냉수먹고 정신차려야 할 때가 많으니 따뜻한 것 보다는 차가운 걸로, 그래서 아이스바닐라라떼!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받아서 맡아놓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누가 내 앞에 앉았다.

"혼자 왔어?"

헐, 그 찰나적인 순간에 요즘도 헌팅하나 싶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미영이 남자친구였다. 전도사님.



"어? 대박. 안녕하세요!"

"어떻게, 혼자 온거야?"

"네.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왔어요. 잘 지내세요? 미영이랑 연락못한지도 오래됐네요."

"어.. 모르니? 미영이랑 헤어졌어."

"아........"

몰랐던건 아니었다. 확인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가 미영이가 헤어진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미영이한테 이별여부 확인한다고 연락하긴 좀 그랬다. 딱히 다른 일로 연락할 명분도 없었고.

"아.... 왜.....요.....?"

"한 2주 정도 서로 바빠서 못 만난 적이 있거든. 만나서 영화보기로 했는데 미영이가 영화볼 기분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각오하고 나오라고. 그냥 느낌이 반반이었어. 각오는 했지. 만나자 마자 말하더라고. 그만 만나자고....."

이 다음에도 계속 말이 이어졌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다시 만날 생각은요...? 그래도 7년이잖아요."

"그럴거면 헤어지지 않았지."

아.. 전도사님도 마음이 확정되었구나 싶었다.


무슨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 미영이를 따로 만난 적이 있었다.


"이제 아버지랑 잘 지내?"

내가 물었다. 얼마 전 미영이 페이스북에 가족여행사진을 올렸는데 아버지가 머리위로 하트를 크게 만들어 사진을 찍은 것이 너무 낯설었다.


"내가 나가서 사는 2년 동안 오빠가 한 번도 아빠를 찾아가지 않아서 아빠는 화가 났었다 하더라고."

"응? 언제 설날에 3시간 동안 무릎꿇고 기다렸다며. 아빠 방에서 안나오시고."

"그건 내가 집 나가기 전이래. 오랫동안 별 일이 다 있었어가꾸, 나도 헷갈려."

"하아 아버님.."

"왜 자기한테 노력을 안했냐는거지."

"니가 아빠 공장도 가고 그러지 않았냐?"

"응. 나만 갔었지. 내가 더 매달리는 것 같았데. 노력해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보고 니가 왜 난리였냐고. 오빠 데려가면 또 험한 일 날 것 같고, 나도 오빠한테 우리 아빠가 너무 창피하고 그러니깐 혼자 해결해보려고 했던 건데 오해도 있었고 그랬네."

"아.... 아이고 어렵다, 아버지."

"어, 그냥 평범한 사람 만나래. 평범 되게 좋아해."

순간 스쳐갔다. 그 평범한 사람, 내 남편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했을 때 딱 그 평범한 회사원.

주 5일 출근하고, 아침 9시까지 출근하고 6시면 퇴근하고, 1년에 휴가 15일 주고, 매월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오는 사람. 사업도 장사도 하지 않고, 목회도 학업도 하지 않으며 집- 회사- 집- 회사 하는 사람. 딱 내 남편. 그 어려운 사람을 내가 만났구나.


"넌 괜찮아?"

"괜찮지. 괜찮으려고 헤어진거야."

"만나는 사람은 있어?"

"아니."

"사는 건 재밌고?"

"응. 괜찮은 것 같애. 지금은 엄마때문에 같이 사는데 내년쯤 되면 그냥 독립해서 살려고. 결혼이든 아니든."

"맞어. 나도 생각했었어. 한 집안에 성인 두 세대는 같이 사는게 아니야."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보니 고3을 많이 맡아왔다는 이야기, 해외연수를 다녀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자기 조카도 내 아이와 개월수가 비슷하다는 이야기 등. 내 기억에 첫째가 돌 되기 전이라 내가 미영이 만날 때 데리고 나갔던 기억인데, 지금 내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 시간동안 미영이를 또 만난 적은 없다.




3년 전, 미영이의 남자친구였던 전도사님은 결혼을 했다. 인적 네트워크로 봤을 때 미영이가 모를리 없을 것 같다. 이런 일로 연락을 하긴 좀 그렇고.


알고보니 나의 둘째 산후조리원 동기언니가 미영이랑 같은 교회사람이었다. 언니도 미영이를 알고 있었다. 미영이가 언니랑 친한 후배랑 만나고 있다고 했다. 너무 기뻤다. 기뻐함도 잠시, 엄청난 반대에 부딪치는 중이라고 했다. 남자분은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미영이 아버지가 변하지 않으셨다면 허락하실리 없지.

그해 미영이 생일에 축하인사를 전하며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두 번 정도 팽을 맞았다. 미영이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나 싶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나도 나의 삶을 살고 있고, 소식은 그저 카톡프사나 페이스북 통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 같은 빅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재작년, 미영이 남자친구였던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되셨고, 다른 교회로 부임해가셨다.


"사랑은 무엇이길래 고통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걸까."

유럽에 다녀온 저녁에 미영이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 나는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저렇게 썼었다.




누구의 사랑이든 사랑은 다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미영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가끔 미영이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한 연애(연애마저 평범함-_-)를 하고 있는 나의 사랑을 너무 사랑취급 안해주는 것 같아 섭섭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 미영이 정도라면 취급받지 않아도 수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둘은 행복할까.


미영이아버지가 그렇게 부르짖던 '평범한 사람'을 만난 나는 행복하다.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묻는다면 행복이다. 행복은 하다. 내 사랑은 그 사랑에 비하면, 굳이 비하지 않더라도 특별하지 않았다. 글로 쓸만한 스토리도 없이 결혼이라는 연애의 실패로 들어선 나는 결혼도 출산도 지금까지도 '평범'이라는 단어의 실재를 세상에 펼쳐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며 미영이에게 카톡을 보내보았다.

그냥 니 생각이 났다고, 어떻게 지내냐고.

잘 지낸다고 했다. 운동하러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독립해서 나와 산다고 했다.

흔쾌히 올해가 가기전에 만나자고 했다.


20년 된 오랜 친구지만 거의 안 만나고 못 만난 기간이 10년이다. 그 사이에 내 인생 태반은 남편과 아이들로 점철되어 있고 미영이는... 미영이의 인생은 무엇으로 점철되어 있을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무엇에 공감할 수 있을까. 만나도 괜찮을까.


잘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도 남이 재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 해 전에 카톡으로도 풍겨져 나오는 싸하고 어려웠던 느낌에 비해 이번엔 답도 빠르고 웃음도 나왔다.

내 기분탓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평범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그 사랑은 단 한 번 오는 것은 아닐테니 너무 목숨걸지 말기를


서로의 기억속에, 아니 한명의 기억속에라도 아련하고 그리운 게 연애의 성공입니다.

이러고 사는게 연애의 성공이 아니라고요. 현재진행형의 실패라고요. 실패가 안 끝나.

그런 면에서 내 연애의 성공은 그 썸남이다. 내 남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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