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영어에 대한, 영어권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다. 코로나이후로 미국과 유럽에 대한 동경이 상당히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사대주의가 아예 없어지진 않았다. 생각을 바꾸는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영어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고로 29살부터 결혼하기 전 달 까지 4년 정도 영어학원을 주욱 다녔다. 일에 따라 한 두달 공백을 두긴 했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중단없이 4년간 성실하게 다녔다.
오래 다닌 짬밥덕에 원어민 클래스로 들어간 첫 시간. 오전 반이라 그런지 우리 반엔 선생님 포함 나 까지 4명이었고, 선생님 말고는 다 여자였고, 왠지 모를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한 분은 당시(2010년) 8년간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케이트였다. 30대 후반 정도였던 것 같고 독어 외에도 할 수 있는 외국어를 개발하고 싶어 오셨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이 바로 '오드리'라는 분이다.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평범한 옆집 이모님^^같은 분위기라 더 특별한 첫 인상이었다. 영어 학원에 50대 이상의 분들이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쩌다 남자 분이 있었고, 그것도 중간 레벨 정도까지였지 원어민 클래스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하이, 나이스 투 미츄. 아임 오드리. 아이 돈 노 마이 에이지, 비커즈 에브리이얼 마이 에이지 체인지드. 아임 해피 투비 히얼. 땡큐."
너무 인상적인 소개였다. 매년 나이가 바뀌어서 자신의 나이를 모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발음은 한국적이었지만 유창하기로 따지면 셋 중 제일 뛰어나셨고, 영어로도 웃길 수 있는 분은 오드리님 한 분 뿐이었다.
알래스카와 오로라 투어 빼고는 전 세계를 다 여행해보신 분이었고, 취미는 골프라고 하셨으며, 어느 수업날엔 어제 저녁에 집들이 한다고 손님 30분이 오셔서 밤새 설거지 하느라 너무 피곤하다고 하셔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집이 얼마나 크면 30명이 들어올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얼모스트 원 헌드레드 평?"
하셔서 모두들 개깜놀. 그 이후로 우리는 오드리를 '수퍼리치 오드리'라고 불렀다.
남편의 수퍼리치를 향한 꿈ㅋㅋㅋㅋ
레벨만 맞으면 어느 시간대의 수업을 들어도 상관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간혹 낯선 학생이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주축은 우리 셋이었고 두 달여 같은 클래스를 주욱 이어가던 날, 수업을 마치고 오드리님이 우리 둘에게
"바쁘지 않으면 같이 식사하고 갈래요? 내가 쏠게."
하셨다. 오후 늦게 출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반갑게 동의했고, 다른 분도 같았다.
우리는 같은 건물에 있던 아웃백으로 갔다. 오픈 직후라 창가 옆에 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로 안내 받았다. 봄 햇살이 쏴아 들어오는 게 적당히 눈부시고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오드리는 너무도 능숙하게 본인의 메뉴를 고르셨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우리 엄마도 그렇고 그 연배의 분들은
"어우, 난 몰라. 그냥 알아서 시켜줘."
하실텐데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론 안도하기도 했다.
식사가 나오면서 우리는 점점 바빠졌다. 말도 해야했고 음식도 먹어야 했으니. 그러면서 더 즐거워졌다. 그러는 가운데 오드리가 물었다.
"수업 올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둘 다 너무 예뻐. 결혼은 안 했댔고. 남자친구는 있어요?"
"아니요."
"저도 없어요."
"아이고, 왜. 예쁠 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요~"
"오드리님도 안 하셨잖아요. 헤헤헤"
"그야, 나는 뭐 아빠가 너무 싫어서 평생 남자에 관심도 없었고 좋아한 적도 없어. 엄마도 결혼하란 말 한 번 안했고. 남자친구들은 많지만. 어쨌든."
"어머님도 결혼하란 말씀을 안하셨다니 좀 의외...네요...?"
"응. 우리 언니도 안했어."
"어머, 정말요?"
"응. 우리 셋이 같이 살아. 외롭지 않아서 좋지. 근데 그래도 있잖아, 친구들을 만나잖아? 그럼 예전에는 남편만 없었거든. 근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어머, 나는 남편만 없는 줄 알았더니 손주도 없네 싶더라고. 그래서 내가 젊은 사람들 보면 꼭 얘기해. 결혼하라고. 나는 뭐 후회하지 않지만, 남편은 미워도 손주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더라고."
그때 약간 띵- 했던 나의 감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단발적인 연애와 아픈 이별과 괴로운 매물시장(선이나 소개팅)에 정말 신물이 났었다. 그냥 혼자 살아야 하나. 독신선언을 할 때인가. 적당히 돈 모으면 여행다니는 인생을 살아야지. 아, 그러기 위해선 보험을 몇 개 좀 들어놓을까 하며. 지긋지긋한 싱글인생에 독립을 선언할 시점을 노리던 30살이었다.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불을 받은 경험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 날 바로 그 순간!
그 순간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좀 웃기지만, 믿겨지지 않겠지만 진짜 그랬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남편만 없는 게 아니라 손주가 없는 것이구나(이제와 생각해보면 남편 있어도 손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오드리야 언니도 어머니도 계시니 괜찮지만(?) 나는 내가 주말에 약속도 없이 집에서 무한도전 보며 촤하하하하 박장대소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야! 나가!! 서른 넘은 애가 주말에 집에 있는 게 말이 되냐!! 시끄러!! 나가!!!!"
라고 샤우팅 하시는 엄마아빠가 집에 상주하고 계셨다.
나는 수 없이 많은 '나가'.
밥 안 먹을거면 나가, 그렇게 많이 먹을거면 나가, 그렇게 크게 웃을거면 나가, 삐질거면 나가, 이렇게 늦게 다닐거면 나가,
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
그래서 나는 정말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 시점에 나는 집에서 나갈 결심 대신 '결혼은 해야하는 것이다'라고 결심했다. 여전히 남자친구도 없고, 매물시장에서 신물이나 토하고 있었지만 다소 냉소적이었던 매물시장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며 뭔가 노력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오드리는 인상적이었던 여행지(남아공 케이프타운을 제일로 꼽았다. 이유는 기억이 안남), 골프이야기(사용하는 것이 중고저가 클럽이라 같이 필드나가는 멤버들이 처음엔 비기너 취급했지만 결국 본인이 1등해서 주말마다 필드 나가자는 약속이 밀려있다고), 본인이 사시는 집 옆에 땅이 나와서 계약하러 가신다(그 땅은 130평)는 등의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해주셨다.
이것이 잘난 척, 있는 척이 아니라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우리나라와 지구의 이야기였다. 늘 에코백에 교재와 모나미볼펜을 갖고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더 매력이 느껴지고 이런 분을 알고 지낸다는 것이 너무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그 후로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함께 식사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2년쯤 같은 클래스생활(?)을 하다가 나는 정말 결혼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축하해주셨고, 칭찬해주셨다. 너무 잘됐다며. 내가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을 주신 분이 바로 오드리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그럼 난 자기 인생에 은인인거네? 그럼 나 니 결혼식에 밥 먹으러 갈게."
역시 오드리다운 위트.
정말 오드리는 내 결혼식에 와주셨고, 상당한 액수의 축의금도 주셨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감사하다는 연락을 따로 드리긴 했지만 뵙고 싶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두고두고 늘 생각이 났다. 새로운 생활 즉, 신혼생활에 좀 적응을 하면 영어학원에 다시 다니려고 했지만 만성 기관지염과 신경성 뭐뭐뭐 등 다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저런 몸의 신호가 있었다. 마냥 신나고 행복하게 보냈던 신혼생활이기도 했지만 살림의 ㅅ도 모르고 시작한 신혼살림이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랬었나보다.
신혼부부에게는 주말에도 이래저래 인사드리러 가야하는 분들이, 서로의 가족이나 지인들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벤트들이 많았다. 그러는 사이 7개월쯤 후엔 임신도 했고, 가끔 카톡 정도 주고 받다가 그냥 내 일상을 살고 어쩌고 하다가 결국 그마저도 끊겼다.
본인의 나이를 모르신다고 하시며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전쟁 후에 태어난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셨었다^^ 그렇다면 지금 일흔 즈음의 삶을 살고 계실텐데, 부디 건강하시길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그 사이에 알래스카와 오로라 투어도 다녀오셨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