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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22. 2024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미술관, 고기먹고 미술관으로

고기앞에서 모였다가 제주도립미술관으로

코로나가 기세를 꺾으면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도 본격화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표가 비쌌다. 금요일에 출발이어도 낮출발인데 저가항공이든 아니든 8~9만원선이다. 다행히 유효기간이 임박한 마일리지가 있어 아시아나를 타고 가기로 했다.


 게이트앞에서 출발시간에 비해 빨리 파이널콜을 불러서 왜그러나 싶었는데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까이로 가서 사다리를 타고 비행기에 탑승해야하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탑승길이었다. 예전에 에어아시아탈 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9만원짜리 국적기를 이런 방법으로 타다니 생소하고 난감했지만 여행에는 이마저도 추억이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했다. 만삭여행부터 코로나오기전까지 매년 제주도에 갔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인데도 3년만의 김포공항은 어디로 가야 탑승할 수 있는건지 에스컬레이터도 안내판도 안보이는 기분이었다.


제주공항에 내려서도 그랬다. 5번게이트로 나와서 렌트카회사차량을 타야하는데 번호가 어느 방향으로 매겨진건지 숫자도 방향도 까먹은 사람처럼 우리 일행 셋은 우왕좌왕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를 보고있자니 길이 안찾아져도 괜찮은 느낌.


 렌트카를 찾고 공항에서 가까운  솔지식당에서 기막힌 멜조림에 고기를 추가추가추가해가면서 먹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첫 미술관!! 15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제주도립미술관은 입구부터 아우라가 상당했다. 널찍하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마당과 건물이 물을 사이에 두고 조화를 이루어 멋있어 보이기도 더 넓어보이기도 했다.

 '나 미술관이야~'하며 아우라가 뿜어져나와 입장하기도 전인데 마음이 완전히 흘러내렸다.


  


 열리고 있는 전시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없는 채로 갔다. 작년말까지 비엔날레가 열렸다는 것과 공항에서 가깝다 정도.

23년 6월당시 열리고 있던 전시는 <별헤는 밤>과 <무릉도원보다 지금 삶이 더 다정하도다>였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 마당에서 부터 마음을 다 뺏겼기에 내부의 작품이 무엇이었어도 우리는 작품에 매료되었겠지만 전시장안에 들어서자 노란 벽에 걸린 수묵화들은 흡사 매직아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미술을 좋아하지만 고흐와 고갱 등의 인상파시대의 작품이 아직은 익숙했다. 입체파와 추상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등은 피카소나 잭신 폴록 등 화가들의 유명세로 인해 보긴 했지만 '캔버스에 유화'라고 써있는 작품들이 익숙하고 유화 특유의 또렷한 색감이 감상하기 편하게 다가왔었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묵화. 우리나라의 수묵화. 수묵화라고 하면 겸재정선의 <인왕제색도>, <진경산수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파도처럼 다가오는 수묵화들이라니.

 분명 흑백임에도 컬러처럼 색깔이 다양해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정말 폭포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에어컨때문에도 서늘했던 주변이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화선지나 한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순지, 닥지 등 종이의 종류도 다양했고, 종이의 종류가 달라도 사실 '캔버스에 유화물감'과는 달라서 먹과 물의 농도맞추기가 보통일이 아닐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흔들림도 오차도 없이 쭉 뻗은 선과 터치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림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는 느낌이 다르고 고개를 돌리다 언뜻 본 느낌이 다르고 다른 그림들 다 보고 다시 돌아와서 보는 느낌이 또 달라서 새롭고도 깊은, 정말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다.


 한국화, 또 수묵화라고 하면 유화에 비해 좀 흐릿해보인달까 힘이 없어보인달까 한편으로는 가난해 보인달까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렇게 컬러풀하고도 깊이감도 있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다양한 모습이 그간 나의 수묵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셨고 수묵화로도 원한다면 충분히 화려함도 추구할 수 있구나, 싶었다.


 





감동은 나의 것만은 아니었다. 미술관 문닫는 시간까지 한걸음한걸음 아쉬워하며 발을 옮겼고 마당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미술관 1층에 있는 카페 델문도에서 커피도 샀다. 예술을 이야기하려면 커피가 필요하니까. 커피향과 함께 미술관 마당에 서 있는 조각작품들을 보며 수묵화의 여운을 천천히 소화시켰다. 미술관 내부뿐 아니라 바깥도 작품인지라 마당만 돌아도 충분한 감상과 힐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수묵화의 감동으로 한동안 말없이 미술관 건물 앞 물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배고파."


 예술의 감동은 커피 뿐 아니라 밥도 필요로 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 근처에 전복집이 있어 전복물회와 전복볶음밥을 포장으로 주문해놓고 차에 올랐다. 내가 본 그림은 분명 그림이었지만 제주 풍경도 그림같고, 어둑한 하늘과 현무암의 조화는 수묵화같기도 하고. 깊은 여운에 서로 예상치 못한 감동이었다며 우리의 대화는 잔잔했다가 폭풍같았다가, 그랬다.


 최근 10년간의 여행은 다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키즈펜션이거나 리조트거나, 그랬는데 이번엔 어른들끼리의 여행이라 인스타감성 가득한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사장님이 알려주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여긴 숙소야, 갤러리야?


 이번 미술관여행 제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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