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해외여행이 좋다고 하셨어
올해 엄마가 칠순을 맞았다.
고희연.
고희연에 대한 나의 부담은 옛날부터 좀 큰 편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 외할머니가 칠순을 맞으셨다. 학교에서 한창 체육수업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소복같고도 선녀같은 한복을 입은 우리 엄마가 나를 데릴러 오셨다. 전혀 귀띔이 없었기 때문에 무슨 대단한 일이 있나 싶어 어안이 벙벙한 채 차를 탔다. 도착하고 보니 세상 멋진 궁궐같은 곳에 연못도 있고 연못안엔 물고기도 헤엄치고 다니고 방도 여러개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시는 진짜 선녀같은 분들이 계시고 우리는 앉아만 있어도 음식이 막 쉴새 없이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풍채좋은 아저씨가 생전 처음보는 엄청 큰 카메라를 어깨에 지고 외할머니뿐 아니라 우리도 막 찍어가셔서 외할머니의 칠순잔치가 텔레비전에도 나오는건가 생각할 정도였다.
외할머니는 당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카퍼레이드할 때 목에 거는 그런 꽃목거리를 두르시고 여섯이나 되는 자제들의 절과 인사를 받으셨다.
70년이나 산다는 것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이구나, 생각하며 엄마아빠의 칠순을 상상했었다. 당연히 부모님이 칠순넘어서까지 사셔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외할머니야 6남매를 두셨지만 우리는 나랑 남동생 둘 뿐인데 칠순잔치를, 두 분 다 살아계시다면 저런 성대한 잔치를 두 번이나 치를 만큼 나는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그 어린 나이에도 먼저였다.
후에 엄마를 통해 들은 얘기로는, 외할아버지가 요절하다시피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의 고희연을 성대하게 해드린 것도 있고 외할머니가 워낙 몸이 약하셔서 칠순까지 사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는데 칠순을 맞으시니 너무 감사해서 크게 했던 거라고 하셨다.
외할머니는 앙상할 만큼 마른 체형이셔서 특히 계단을 오르 내리실 때는 내 마음이 다 휘청거릴 정도였다. 할머니 스스로도 본인이 약하다고 생각하셔서 늘 조심하시고 좋은 것 드시며 본인을 챙기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는 80세 산수연도 치르시고 88세 미수연까지 맞으신 뒤 89세에 돌아가셨다.
드디어 아빠의 칠순.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말은 순 뻥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빠의 혈육들이 모일 수 있는 동네의 한식당에서 조촐하지만 성대한(?) 식사를 했다. 다행히(?) 코로나 중이라 외할머니때 같은 큰 잔치는 불가했다.
근데 백두산에 보내달라고 하셨다.
.......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식사했잖아....
동생과 갹출하여 백두산으로 패키지여행을 보내드렸다. 4박5일 중 백두산에 올라가는 일정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두 번 모두 날씨가 좋아서 맑은 천지를 다 보고 오셨다며 흡족해 하셨다. 일정도 식사도 가이드분도 같은 패키지여행객분들도 다 만족스러우셨었나보다. 다녀오시고 나서도
"죽기전에 백두산 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니들 덕에 다녀왔다."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다.
기습적인 아빠의 요구로 다소 머리통이 아팠지만 과격한 효도를 했다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엄마랑 아빠는 6살차이가 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이젠 엄마가 칠순이다.
엄마는 6남매 중 막내라서 칠순이라고 혈육을 부를 군번은 아니고(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도...)우리끼리 식사하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 생각이 좀 달랐다. 식사도 식사지만 엄마가 사별한 지 3년이 되었고 생각보다 큰 태풍없이 엄마가 씩씩하게 홀로 잘 살고 계신 것에 감사도 표할 겸 같이 해외여행에 가기로 했다. 엄마와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만.
아이들과 내 남편, 올케까지 다 가자니 축하하는 마음이야 같겠지만 그거슨 여행이 아니다. 아이들이 갑질을 할 것이 분명할테고 순혈 B형인 우리 개개인들은 각각 갈라서게 될 것이다.
행선지는 삿포로로 결정했다. 동생이 결정했다. 풍경이 너무 좋으니 삿포로로 가잔다. 나도 겨울의 삿포로를 이미 알고 있다. 엄마가 태어난 겨울, 삿포로만한 여행지는 없다. 엄마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날짜는 3월 둘째주로 정했다. 겨울의 삿포로를 만끽하려면, 또 엄마 생일에 맞추려면 2월이어야 하는데 애들을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고 가야 하는데, 방학 때 맡기긴 좀 미안해서 개학을 하고 새학년 새학기에 간단한 적응을 마친 3월 둘째주가 낫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패키지를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눈이 무지막지하게 내리거나 쌓여있을 삿포로이기 때문에 렌트를 하거나 자유여행을 하기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심지어 순혈B형인 우리가
'여긴 누가가자했냐'
'니가 이거 먹자했냐'
'그때 가면 빠르네 느리네'
'굳이 거길 가냐안가냐못가냐'
'내말은 다 맞고 니말만 다 틀렸다..'등의 의견충돌이 없을리 없기 때문에 패키지로 가는 것에 이백퍼 찬성.
칠순이긴 하지만 실속있게 1인 110만원 정도의 3박4일 패키지를 찾아서 결제했다. 그 무렵 폭설로 인해 신치토세공항이 닫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지진이 나는 등 뉴스가 많았어서 좀 걱정되었는데 걱정은 나만 하는 것 같았다. 칠순의 엄마는 안전에 대한 염려는 1도 없고 여행에 대한 기대만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전화에서도 카톡에서도 덕지덕지 묻어날 지경이었다. 안전에 대해선 나도 별 생각없기로 했다.
내가 느끼기에 일본에서 지진이 났다,는 것에 대해 일본인이 느끼는 감정은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그정도면 아무 일도 없는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가이드분이 인천공항에서부터 같이 가주시는 패키지였고, 35명을 모집하는 패키지였는데 16명만 모객이 된 상황이라 40인승 버스에 널럴하게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다. 숙소가 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늘 아빠랑 캠핑여행만 다닌 엄마는 상당히 괜찮은 컨디션의 호텔로 받아 들이셨고 음식에 대해서도 특별한 취향이 있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 잘 드시고 좋아하셨다.
한겨울은 지났을 타이밍이라 눈이 녹아있는 모습이 조금 아쉽긴 했는데 오히려 엄마는 절정의 삿포로 절경을 모르셨기 때문에 너무 멋지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내가 이 늙으막에 자식들 끼고 이런데 올걸 상상이나 했겠냐고 하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좀 민망하기도 했다. 뭐 이정도에 그렇게 감동받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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