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고
막연한 계획이었다. 글을 쓰는데 소질을 점검해 볼만한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반드시 전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꿈’이라는 단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말 인줄 알았다. 내가 어른 비슷한 입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꿈에 관한 질문을 받은 일이 생각난다. “엄마는 꿈이 뭐예요?” 큰애가 여덟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창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던 나이라 아무런 필터링 없이 엄마인 나에게도 물어왔다. 아이의 순수한 태도에 웃음이 먼저 반응했지만, 그 질문은 잠시 나를 주춤하게 했다. 대답은 하지 못했다. 단지 생각했다. ‘난 이제 꿈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어.’
이상하게도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은 내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다. 유효기간을 늘려주면서까지 내게 꿈을 가지라고 말을 건네는 듯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나만의 책을 펴내는 것’이라는 창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냐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이 있었다. 생각 끝에 ‘나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귀결 지었다. 누구한테 나를 내보이고 싶은 걸까?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근원은 나였다. 굳이 내게 나를 증명해 보여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내보이지 않아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근데 아니었다. 언어화 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려는 노력 없이는 나를 알기 어렵다. 흔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우리는 하곤 한다. 나의 행동, 생각들을 언어로 편집해서 나를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아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임을 각오하고 시작하긴 했어도 각오만으로 쉽게 넘을 수 있는 산은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쓰는 행위를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매번 새로운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일과도 같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같이 넘어보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듯 했다.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 회의감이 들 때, 글감이 없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슬럼프에 이렇게 대비하라고 저자는 건넨다. “봄바람처럼 그것이 삶에 찾아오거들랑 잠식당하지 마시고 글쓰기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서 슬렁슬렁 잘 타고 넘으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는 중 돌파구가 필요할 때는 “글을 쓰다 막히면 상기하거나 묵혀두거나 포기한다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익지 않은 땡감은 따도 먹지 마세요.”라고 느긋함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더더구나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은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이었다.
“만약 제가 글쓰기를 그만둔다면 재능 없음을 비관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없음을 비관해서일 거예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 인간에 대한 호기심, 살아가는 일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게 없어진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에 있어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고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감동과 공감이 폭풍처럼 밀려오게 하는 대목이었다.
글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작가의 말도 있었다. “안 보이던 사람이 보이는 일은 일상의 작은 혁명이다. 배달 노동자를 인터뷰한 책을 읽고 나면 건물 승강기에서 만난 배달 노동자를 이전과는 다른 눈길로 보게 된다. 어떤 대상을 표면적인 존재가 아닌 입체적인 인격으로 보는 감각이 시민 의식이다. 너도 나도 쓰고 말하고 듣고 생의 경험을 교환하다보면 사적인 고민은 공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일상이 먼지처럼 숨어 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책과 글쓰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 이해의 심층에 도달할 수 있을까.“ 글을 씀으로써 나를 포함한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보니 글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히 써야 하는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쓰려고 했던 나의 글쓰기를 한 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나’에서 시작했지만 그 다음은 ‘상대’ 또 그 다음은 타인으로 시선을 넓히게 되는 것, 나의 글쓰기가 사적인 고민에서 공적인 담론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마중 나가 있겠습니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언젠가 도달하게 될 그곳을 향해 나는 오늘도 쓰면서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