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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Aug 24. 2024

‘어른’의 정의를 내려주신 분

< 영화 [어른 김장하]를 보고 >

기내에서 영화를 흥미롭게 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저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인생영화를 만났다.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에는 없다. 시간도 때울 겸 의문도 해결할 겸해서 이 영화를 택했다.  

   

영화는 다큐 형식이었다. 영화 첫 부분에 진주 지역이 나온다.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곳, 진주의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는 비교적 최근인 23년에 개봉되었다. 주인공 김장하는 진주 남성당한약방으로 유명한 한약사였다. 위치와 간판을 보니 낯이 익었고 지나다니면서 분명 그 한의원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한 자리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했으니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한약방은 건재했던 것이다. 건재를 넘어서 진주 시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곳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김장하 선생님은 이 시대 보기 드문 어른이었다. 다큐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눈물이 좀 과하게 흘렀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교육, 역사, 인권, 여성평등, 장애인 지원, 예술, 문화 지원 사업 등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역 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었다. 도움을 주면서도 받는 학생들에게 말을 아꼈으며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선생은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토록 큰 사명감을 갖게 했을까 하는 의문에 그는 천재였다는 말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선생의 시선은 나 라는 울타리 안데 머물지 않았고 세상을 향해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모조리 꿰뚫고 있었고 실천에 옮기신 분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자동차 한 대도 용납하지 않았고 오로지 평생 자전거에 의존했던 선생이다. 지금은 잰걸음으로 걷는 두 다리가 그의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다.

     

방송국 기자였던 김주완 씨는 그분의 업적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선행을 숨겨오던 선생이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극도로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고 공치사받는 일을 제일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분이 업적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기자가 뒤로 물러섰더라면 이런 훌륭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끈질긴 구애와 고심 끝에 창의적인 방식의 다큐가 태어날 수 있었다. ‘인터뷰라는 것이 반드시 기존의 틀을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미치자, 기자는 고기몰이 하듯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당사자 대신 주변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니 인터뷰는 마치 릴레이처럼 연결되더라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해 주었다. ‘그분이라면 응당 취재할 만하지요’ ‘그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지요.’ 그렇게 영화가 탄생된 것이다.     


취재에 응한 많은 사람들이 김장하 선생님을 보면서 자신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부끄러움 삶을 살지 않아야지 생각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귀감이 된 한 사람의 숭고한 삶을 보았다.  

 

기자의 노력에 감화한 것일까. 영화 뒤편으로 갈수록 김장하 선생이 등장한 장면들을 영화는 담아내고 있었다. 순박하고 온화한 성품이 얼굴에 판박이처럼 베껴져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겸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미소를 가지셨다. 22년 5월을 끝으로 긴 세월 건재하던 한약방 셧터문이 내려지는 장면과 함께 영화도 막을 내렸다.  


기자는 김장하 선생을 보면서 어른을 '젊은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한 마디로 '어른=김장하'라는 공식이 하나 만들어진 셈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보기 좋은 무대설치도 없는 영화였다. 오래된 간판에 세월의 먼지가 꼈고, 철물점을 방불케 하는 한약방의 셧트가 고작이었다. 한없이 검소한 내면과 외면을 가꾸며 선행을 실천한 한 인물만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지금껏 보아온 영화 중 내게 가장 감명을 준 영화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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