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로 영어공부하기
< 영어 해방일지 4 >
꽃샘추위가 남았을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피부에 와 닿는 추위는 막을 수 없다. 마음먹었던 계획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해이해질 때가 올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닥치고 보니 막을 방법을 알 길이 없다. 슬럼프가 온 건지, 어제 운전을 오래 한 탓에 피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요양보호가 필요한 어르신을 만나고 우울감이 몰려와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영어가 너무 안 되어 의기소침해진 탓인지...
이유를 대자면 수 만 가지는 될듯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큰 원인은 영어인 것 같다. 수개월간 쉼 없이 달려왔건만 늘 제자리걸음이라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변화무쌍한 봄의 기후만큼이나 의지도 변덕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억울한 누명을 영어에 덮어씌운 건 아니다. 최근 명백한 이유가 될 만한 것을 두 가지 정도 손꼽을 수 있다. 하나는 3월 들어 레벨을 중급으로 올린 탓에 내게 무리한 수준을 너무 강행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초적인 영어표현에도 관사며 시제가 틀리는 건 다반사다. 하물며 중급에서의 세분화되고 다채로워진 표현들을 따라가자니 가랑이가 안 찢어지고 배길 재간이 없다. 고급적이고 관용적인 표현보다는 단순한 표현들로 정확한 전달이 먼저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강성태의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고 욕심을 버려라’ 이 간단한 진리를 나는 모두 무시했었다. 무시죄로 혹독한 스트레스를 선고 받고, 죄값으로 의욕상실을 징수해야만 했다.
무수히 들어왔던 말, 중고등 교과 수준만으로도 회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라는 말을 명심하기로 했다. 과감하게 3월호의 중급 책을 내동냉이 쳤다. 속이 후련했다.
또 하나는 로이라는 영국인이 프리토킹반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다. 그는 지금껏 만났던 여느 외국인과는 다르게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지적하기를 꽤 자주 해주었다. 원하던 것이었지만 막상 지적을 여러 번 받다보니 이건 자신감의 상실로 직결되었다.
지적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중압감이고 사기가 꺾이는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맞든 틀리든 무조건 내 지르라는 뭇사람들의 조언과 그동안 거쳐 간 수많은 외국인들이 상대가 하는 말이 틀려도 함부로 고쳐주지 않던 것 뒤에는 깊은 철학적 사유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 뒤통수를 부여잡고 레벨을 낮추는 것으로 통쾌한 합의를 보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유튜브에서 챗GPT로 효율적 영어공부하기를 다룬 컨텐츠를 보았다. 챗GPT 검색창에서 구체적인 명령어만 잘 넣기만 해도 영어대화는 가능하다지만 오늘 알게 된 방법은 좀 더 간편한 방법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방법은 챗GPT를 카톡 안에 심어놓은 느낌이다. 카톡 검색창에서 AskUp을 찾아 채널 추가한다. 그런 후 대화를 시작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마이크 기능을 켜서 내 목소리를 입력하면 그대로 문자로 변환을 해준다.
사진에서처럼 영어로 말하면 영어로, 한국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내 말을 문자화 시켜준다. 놀랍다. 타자를 칠 필요가 없으니 시간도 무척 절약이 된다. 문자화 된 메시지를 전송하고 잠시 기다리면 AskUp으로부터 답변이 온다. 음성지원까지는 아니지만 문자로 답변이 오는데, 그 내용의 알차기가 실로 감탄 수준이다.
프리토킹 수업을 가기 전 예습을 할 때 혹은 일상생활에서 모든 상황을 영어로 연습해 보기 할 때 쉽게 포기하고 마는 이유가 있다. 내가 표현하는 말이 맞는지 틀린 건지 그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어떤 문장은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다보니 자연스레 포기를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챗GPT는 나의 이런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주었다. 혁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존의 번역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파고나 네이버 사전에서의 번역은 열이면 아홉은 단지 참고만 할 뿐이지 문장 그대로를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많았다. 챗GPT는 다르다. 나의 명령어에 챗이 받아들이기에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친절한 부연설명까지 달아준다. 기존의 검색형 AI는 이제 생성형AI로 탈바꿈하여 놀라울 만큼 인간의 니즈를 알아서 해결해 주는 수준에 왔다.
홍기빈은 자신의 칼럼에서 말하기를 챗GPT는 산업패러다임의 전환 정도가 아니라 사회와 인간생활 전체를 상전벽해로 바꿀 범용기술이 될 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시각이 지나친 설레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장 큰 고민으로부터 벌써 챗GPT의 강력한 힘을 맛보았다. 앞으로 챗GPT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더불어 나의 영어향상에 대한 행보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