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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Nov 11. 2022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아닐지라도

강찬우 개인전, 자만 벽화마을

요상한 개인전에 다녀왔다. 자만벽화마을 맨 윗집. 벽화마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가난을 구경 삼는 것 같아서였다. 벽화마을이 가난의 상징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는 가난을 보면서 내가 도대체 뭘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민? 불안? 과거? 두려움? 분명한 건 벽화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전혀 없는 건 사실이다.


취재 차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더 둘러보게 됐다. 마을을 꼭대기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클래식 음악이 희한한 이질감을 주었다. 홀리듯이 그곳에 다다랐을 때에는 입구에 들어가야 하나 마자 1분 정도 망설였다. 무료관람이라고 써져있는데도 발길이 가볍지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전시회가 열릴 것 같지도 않고, 사람 없이 음악만 틀어 놓았나, 여기서 잡혀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질 것 같았다. 나중에 동생에게 이 입구를 보여줬는데 다음에는 이런데 혼자 가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무서워서 발길을 돌렸는데 그 순간 지금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공간이었다. 생에 처음 있을 경험을 안 할 순 없지. 시간도 남아돈다. 결국 나는 그곳에 무려 1시간이나 있었고 커피도 마시게 됐고  작가 아저씨 연락처까지 받았다. 


작업실 겸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12년 동안 빈집이라고 했다. 얼기설기 보수한 흔적이 있었는데 놓인 물건들도 예전부터 있던 것처럼 어울렸다. 예전 것들은 과거란 핑계로 다 어울린다고 생각해버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오래된 흔적만은 분명했다. 작가님은 집 외에 소품들은 골동품 상점을 다니며 직접 구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좌.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할 것만 같은 저런 방이 3개 있고 그게 다 전시실이다/우. 벽화마을 끝집 다운 뷰


내 별명이 부엉이인데 작가님도 부엉이를 좋아하셔서 작품 속에서 내적 친밀감을 느껴진다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이 작품은 엽서로도 만들어져 있다


작품들의 가격은 백만 원에서 천만 원 단위로 있었다. 가난의 상징인 이곳에서 이런 가격의 작품이 팔리나 궁금했지만 오늘만 해도 두 점을 팔았다고 한다. 동네는 가난하지만 오는 손님들은 관광객이라며, 직접 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라고도 말하셨다.  나는 덩달아 신이 나서 '엽서 사이즈를 다양화해라, 소시민도 살만한 가격의 작품도 만들어보셔라' 고 훈수를 뒀다. 


좋아하는 예술이 있냐고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고 도자기도 취미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겪게 될 감정에 대해서 미리 언급해 줬다. 잘하고 있다 이렇게 해라 이런 걸 기대했는데 자기 이야기만 오래 하셨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었고 여기까지 와서 진로상담 생각하는 내가 진정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많이 들어줬다. 한 시간 내내 작가님 말이 90프로 정도였고 내 질문은 한 다섯 개정도였다. 아무튼 작가님은 자기만의 파라다이스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이 작가님에게는 그런 곳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행하지 않아도 여행하는 것처럼'이 내 모토 중 하나인데 무사안일주의, 안정 추구 성향인 나에게는 발붙힐 곳이 있는 상태에서야 여행을 즐길 수가 있기에 주변에서 발견한 새로움이야 말로 찐 여행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살아있구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구나. 나 혼자 고독하지 않구나 하고 마음이 훈훈해졌다.


드립 커피를 내려주셨다. 이 주전자를 전기포트에 끓이셨다. 여러모로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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