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나눴더니

더 좋은 물건을 받아버린 이야기

by 김아울

심심하면 정리한다. 남편은 정리할 게 있냐고 물어보지만 자세히 보면 더 눈에 들어온다. 부엌 선반, 베란다, 옷장 등. 한꺼번에 대청소하진 않고 주말에 한 번씩 한 구역씩만 한다. 안 쓰는 물건은 매번 나온다. 그걸 주로 버리기만 하다가 아까워서 당근앱을 켰다.


꽤 크고 두툼한 게 양초를 버리기도 아까운데 팔기는 너무 낮은 가격이었다. 처음으로 나눔으로 게시글을 올렸다. 5분도 채 되지 않을 때 메시지가 왔다. 예약을 마치고, 비대면 거래를 요청했다. 보통 같으면 여기서 대화가 끝인데 이분은 갑자기 부추 이야기를 하셨다.


직접 키우는 게 있는데 먹는다면 수확해서 준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감사하게 받았다. 직접 키우기에 길이가 들쭉 날쭉하다며 손질하는 인내심이 있어야 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아침 일찍 물건을 잘 받았다는 메시지가 왔다. 거기엔 검정봉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안에 다른 게 있지 않을지 약간 걱정도 했지만, 설마 수상한 일이 벌어지겠냐 싶어 가져왔다. 어젯밤 비에 습기가 찼을 거라고 했는데 그 축축함과 더불어 부추의 엄청난 진한 향기가 솟아올랐다.


마트에서만 사던 부추나 순대국밥에 버무려져 나온 부추만 봤지, 직접 재배한 부추는 처음이었다. 부추의 진한 향기를 처음 맡아본 것 같다. 손질하는 인내심이랄 것도 너무 작은 수고로 느껴졌다. 적당히 씻고 무른 부분만 살짝 다듬어내면 되는 수준이었다.


당근에서 이런 이웃의 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안 쓰는 물건이 팔리는 건 좋지만, 매번 깎으려고만 하던 사람들, 가격을 점점 낮춰야 하는 아쉬움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나누는 건 참 마음이 편하다. 뭘 더 나눠볼까.



양초 나누고 받은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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