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PD Nov 13. 2019

2019년 한국 영화에 사기 캐릭터가 넘치는 이유

영화 <기생충>은 사기극이지만 다른 사기극과는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보통 사기극에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사기 치는 역할을 위장할 뿐 그 역할을 정말로 잘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파일럿 행세를 하고 다니지만 비행기를 조종할 줄 모른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최창혁(박신양)은 은행원, 의사 등으로 위장하지만 대출 업무나 수술을 할 순 없다.


반면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는 대학생으로 위장해 과외에 나서지만 신분이 탄로 날 만큼 실력이 모자라지 않다. 그는 학생 다혜(정지소)의 엄마 연교(조여정)가 참관하는 중에도 ‘기세 좋게’ 실력을 선보여 정식 교사가 된다. 기우의 동생 기정(박소담) 역시 연교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선생을 맡는다. 기정이 실력을 입증하는 순간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들로 연교를 구워삶는 장면이 아니다. 비 오는 날 다송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 있을 때 거실에 앉아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에 비해 기정은 다송과 수업할 때 함께 텐트 속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 그 차이는 기정이 전문 지식이 없어도 다송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부모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우, 기정의 무능한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30년 경력의 운전기사로 위장하지만 수준 높은 주행 능력으로 동익(이선균)에게 합격점을 받는다.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 역시 살림을 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기택 가족의 릴레이 사기극은 묘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들은 사기를 칠 필요가 없는데도 사기를 쳐야 취직을 할 수 있는 비운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굶어야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관객들이 이런 설정을 의아해하지 않는 건 현재 우리 사회의 불평등 현상을 영화가 그대로 재연하기 때문이다. 과거 불평등을 다루는 서사가 ‘단지 가난하고 무식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울분’을 그렸다면, <기생충>은 ‘부의 엄청난 격차에 비해 사람들의 능력은 그만큼 큰 차이가 없는 지금 이 시대’를 은유한다. 이 사회는 차별과 불평등한 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선을 긋고 있다. 선 밖으로 나가면 능력보다 더 혹독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동익이 줄곧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강조하지만 그건 그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일 뿐이다.


엑시트>에서 용남(조정석)은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지만 졸업하고 몇 년 동안을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후배 의주(윤아)와 함께 유독가스가 차오르는 도심 한복판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용남은 육체적으로 단련되어 있고 용감하고 인간미도 있다. 영화를 보며 이런 뛰어난 캐릭터가 미취업 졸업자로 나오는 건 모순이 아닌가 싶지만 그런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다. 의주 역시 현명하고 책임감 강한 인물이다. 그가 갑질에 괴로워해야 할 이유를 그에게서 찾을 수는 없다. 용남과 의주가 재난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이유를 영화는 그들의 선의에서 찾는다. 이타적인 이 두 사람은 매번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남을 먼저 배려하다 번번이 떠날 기회를 놓친다. 이야기는 ‘멀쩡한 젊은이들이 멀쩡하지 못하게 사는 것이 진짜 재난’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극한직업>에서 고반장(류승룡)이 이끄는 마약반은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실적은 바닥이라 해체 위기에 놓인다. 그들은 범죄조직 아지트 앞에 잠복하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하는데 절대 미감을 가진 팀원 덕분에 그만 대박이 나버린다. 또 이들은 후반부에 뛰어난 무술 실력을 느닷없이 선보이기까지 하는데, 관객들은 초반에 허당으로 보였던 이들이 유능함을 불쑥 꺼내 소개하는 순간들을 생뚱맞다고 여기지 않는다. 캐릭터의 모순이 현실의 모순을 재연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리얼하다고 인식할 뿐이다. 무기력한 남편이었던 고반장이 치킨으로 번 돈을 명품백에 가득 담아 아내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표면적인 능력이 실제 능력과 무관한 시대를 위트 있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소개한 영화 세 편은 올해 국내 영화 누적 관객수 톱3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이 사실은 빈약한 근거 위에서 만들어진 사기극이라고 모두가 공감을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가 아닐까?



원문보기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911112047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