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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나는 터키를 포함한 동유럽을 촬영을 빙자한 여행, 여행을 빙자한 촬영을 다녔다.
터키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나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소피아까지 가는 머나먼 길.
기억으로는 버스로 약 10시간 걸렸던 것 같다.
터키 ( 지금은 투르키에 라 부르지만 나는 당시에는 터키라 했기에 터키라 하겠다 )와 불가리아 국경에서 검문을 한다. 버스 안에는 아마 내가 유일한 외국인 혹은 동양인이었다.
승객의 짐 하나를 들고 검문소 직원이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눈에 익은 가방이다.
이 가방의 주인이 누구냐 묻는다. 내가 손을 드니 따라오라 한다.
검문소 사무실에서 내 짐을 열고 다 뒤진다. 왜 불가리아를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등등을 물어본다.
그러다 내 배를 가리키면서 배에 숨긴 게 뭐냐?라고 물어본다.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하다가
살짝(?) 나온 내 배에 뭔가를 숨겼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웃옷을 올려서 내 배를 보여주었다. 젠장!
그러다가 가방에서 내 신분증이 나왔다. 내 신분증을 보더니 너 기자냐? 묻는다.
그렇다 하니 얼른 내 짐을 다시 정리까지 해준다. 조심해서 여행 잘하라고 하면서.
그렇게 국경을 통과했다. 한참을 더 간다. 보이는 풍경은 해바라기 밭뿐이었다.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웠던.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었다.
급하게 오는 바람에 숙소도 예약도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긴 버스 여행으로 약간 비몽사몽이기도 했다.
택시 기사들이 호객 행위를 한다. 나의 영어가 안 통한다. 영어를 하는 택시기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나의 영어실력과 비슷했다. 그 택시기사의 차를 타기로 했다.
유스호스텔로 가달라 하면서 중간에 ATM기가 있는 곳에서 잠시 세워달라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택시 요금 기를 안 키고 간다. 왜 안키냐 물어보니 고장 났다 한다.
ATM 기를 발견하고 돈을 찾았다. 250 레프.
숙소에 도착했다. 요금을 물어보니 200 레프를 달라고 한다. 별생각 없이 주었다.
나와 악수까지 하고 기사가 떠난다. 창문을 열고 만세를 외치는 듯해 보였다.
크게 웃으면서.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 프런트에 물어보았다. 환율이 어떻게 되냐?
200 레프의 가치가 당시 200 달라 이상이었다. 그 돈이면 그 택시기사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다 한다.
황당했다. 그간 수많은 경험과 수많은 곳을 다니면서 이렇게 황당하게 사기를 당해본적은 없었는데.
그간 쌓인 피로와 내가 너무나도 불가리아에 대한 정보가 없이 그냥 왔다는 사실이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당시 불가리아의 물가는 하루에 한국돈으로 2만 원을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숙소는 아침 포함해서 보통 1만 원 정도였다. 택시를 타고 다니고 중간중간 카페에서 맛난 커피를 마시고 나름 근사한 식사를 하더라도 다 포함해서 1만 원 정도면 해결되었다.
그런데 택시비로 불과 10분 조금 넘게 타고 왔는데 2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
숙소에 올라갔다. 전형적인 공산주의 시대 때 만들어진 건물이다. 외관은 멀쩡했지만 오래된 분위기는 지울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겨우 2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방안에는 싱글베드 두 개와 책상 하나. 조명도 어두웠다. 첫날은 기절하듯이 잤다.
다음날 소피아를 돌아다니는데 흥이 나지를 않았다. 아마 택시기사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인 듯했다.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왔다. 이상하게 하루종일 다리가 가려웠다. 군데군데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
뭐지?라고 생각하다가 순간 진드기에 물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세네 번 하고 가지고 간 모든 옷들을 세탁했다. 아아아
게다가 새벽에 누가 내방문을 열려고 시도를 했다. 계속적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 달그락달그락 거렸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나는 방안에 있는 책상으로 문을 막아 놓고 비상시를 대비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왔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시라도 빨리 소피아를 떠나고 싶었다. 일정도 마무리하지 않고 짐을 가지고 무작정 중앙역으로 갔다.
매표소에 가서 제일 빨리 떠나는 기차표를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