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첫 1년을 함께 한
1996년. 드디어 파리에 입성했다.
처음 프랑스에 갔었을 때는 어학을 위해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Tours 란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약 1년의 어학연수를 받고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드디어 파리로 올라왔다.
어찌어찌해서 파리 17구에 있는 다락방 하나를 구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다락방.
지하철 역과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리고 근처에는 몽소 공원 ( Parc Monceau ) 도 있다.
주변 환경은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상점도 많고 깨끗한 지역이었다.
좋은 건 딱 그것뿐이다.
다락방이 있는 건물은 약 100년가량되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아주 멀끔했다. 큰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두 개 나온다.
하나는 길가 쪽에 있는 건물주와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사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쪽문 같은 입구가 하나 더 있다.
이 문은 오로지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다락방으로만 가는 문이다.
다락방으로 갈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건물은 7층이지만 층간 높이가 높아서 거의 10층 정도의 높이가 나온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동글동글하게 되어있었다.
어떻게 이삿날 그 많은 짐들을 어떻게 올렸는지 생각하기도 싫다.
전공이 사진이다 보니 늘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녔다. 가방 무게만 해도 거의 20Kg 정도 되었다. 그 무게의 가방을 메고 오르락내리락했다. 가끔 지하철 월 정기권을 까먹고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일일 사용권을 그냥 구입했다.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당시 나의 신조중 하나는 하루에 한 번만 올라가자였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할 수가 없었다.
제일 곤욕스러운 것은 장보고 올 때였다. 특히 물을 사 올 때는 너무 힘들었다. 프랑스의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서 그냥 마실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생수를 구입해서 마셨다. 그 무거운 생수를 들고 10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려면 중간에 한번 쉬고 올라갈 때도 많았다.
방 크기는 약 3평 정도의 크기. 조금 과장해서 말을 하면 방 중앙에 앉아서 팔을 뻗으면 사 면에 다 닿을 정도였다.
그 작은 방안에 화장실 빼고 다 있었다. 침대, 책상, 샤워부스, 싱크대 그리고 옷장.
침대를 위로 올리고 그 밑에 작은 책상을 두었다. 좋게 표현하면 2층 침대.
한 명 겨우 들어가서 샤워할 수 있는 샤워부스. 아주 아주 작은 싱크대 하나.
그나마 다행인 건 옷장 문이 전면 거울로 되어서 방이 조금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방도 직사각형이 아닌 마름모 형태.
다락방을 찍은 사진을 열심히 찾아 보았으나 쉽지가 않았다. 결국 찾은 사진은 작은 싱크대와 창이 조금 보이는 사진. 흑백 사진 현상을 위한 온도계와 현상 도구들을 창틀에서 말리는 그리고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꺼내 놓은 버섯만 있는 사진 한장을 찾았다.
화장실은 같은 층을 쓰고 있는 다락방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 공동 화장실에는 변기 커버가 없었다. 화장실을 갈 때 개인용 (?) 변기 커버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방 문은 외부에서는 열쇠로만 열 수가 있었다. 열쇠를 까먹고 문을 닫는 경우에는 낭패다. 어쩔 수 없이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문을 여는 방법뿐이 없다. 한두 번 그렇게 사고를 쳤다.
싱크대가 있는 벽면에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쇠창살로 막혀있는. 그 창으로 밖을 보면 양철 지붕으로 되어있는 집들이 보인다. 이 양철 지붕 덕(?)에 여름에는 완전 찜통이다. 한낮에 달궈진 지붕이 밤이면 복사열로 방안을 덥게 만든다. 한 여름에는 자다가 샤워를 서너 번은 해야 겨우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날에는 작은 모카 포트로 커피를 내리면 그 향이 작은 방안에 가득 찬다. 책상 겸 식탁에 커피와 바게트 혹은 크로와상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작은 창으로 하늘을 보면 그나마 운치가 있었다.
그 다락방에서 1년을 살았다. 나의 첫 파리에서의 생활을 그 다락방에서 보냈다. 나름 사건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다락방.
그 다락방을 떠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갔다. 새로 이사 간 원룸은 2층에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