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맑음 Dec 14. 2020

Y들의 이야기

Y (please tell me why)


 최근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가 이슈다. ‘요즘 육아’에 대해 베테랑 육아 전문가들이 육아법을 코칭해준다. 이 프로그램의 좋은 점은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금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면 비단 부모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본인의 어린 시절을 “금쪽이”들에게 투영하고, 솔루션을 통해 치유되는 것을 시청하며 본인 안의 덜 자란 금쪽이들을 위로한다.

 내 이야기를 주로 읽는 사람들, 읽고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들은 내 또래였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런 말들이 내가 글을 쓰고 싶어진 원동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내 글을 보여줬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굳이 세대라는 표현을 쓰자니 거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청년, 90년대생이라는 단어들은 사용하자니 뭔가 좀, 부담스러웠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다가 “Y세대”라는 단어가 있음을 알았다. 그전까지는 Y세대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도 금쪽이, 라는 단어처럼 내 글 안에서는 우리 세대를 ‘Y’라는 단어로 쓰려한다. 소개글에 적힌 ‘Y들의 이야기’는 그 뜻이다. 내 주위 Y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Y인 내가 느낀 대로 서술하고 다른 세대들도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브런치에서 제일 처음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태그 기능이 있는 것을 알았다. Y라고만 쓰면 이해가 힘들 것 같아 Y세대라는 태그를 넣고 싶었다. 없었다. 세대라고 검색하자, X세대와 Z세대는 결괏값이 떴지만 Y세대는 없었다. 웃음이 났다. 태그 창에서 조차 Y들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굳이 피해받지 않는 선에서는 귀찮은 것은 나서서 하려 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Y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해놓고 태그가 없는데 신청하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간다. 

심지어 연세대도 있는데 Y세대는 없다.

 X세대와 Z세대 사이에 낀 세대가 Y세대라더라. 그래서 그런지 Y들은 유행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유행을 무조건 따라가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X나 Z사이의 대화에서 혼자 소외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다. 소외감에 대해 공포가 크거나, 뒤처지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간단히 검색해서라도 찾아보려 한다. 3줄 요약되어있는 글들이나 팩트체크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들이 조회수가 높거나 유행처럼 번지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있지 않을까? 한정되어 있는 시간 안에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많다. ‘인싸’까진 아니더라도 ‘아싸’가 되기 싫어하고, 농담 섞인 ‘노인’, ‘화석’, ‘이모’ 까진 괜찮지만 ‘노땅’이나 ‘꼰대’는 되기 싫다. 정확히 말하면 싫다기보단 무서워하는 느낌이 크다. 본인들이 보고 자란 윗 세대처럼 되긴 싫지만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Y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을 경험했고, 사이버 세상에 대해서도 일찍 익힌다. 어렸을 때 부모들이 아무리 쉬쉬하고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들도 일찍 알아버린다. 커뮤니티, SNS, 게임, 블로그, 채팅 등으로 사귄 사람들로 내가 사는 지역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분위기, 유행, 심지어 인강 강사의 한마디로 그 지역의 교육열 또한 쉽게 파악한다. 아는 게 많아지면서 이 세상엔 참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Y들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 커진다. 연예인이든, 애니메이션이든, 게임이든 자기와 다른 분야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시하진 않는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존중을 해준다. 

 우물 안 개구리는 이제 올챙이 적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많아 우물 밖을 궁금해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밀려들어오는 정보들의 방대한 양에 비해 경험이 적어 속은 적도 많고 싸불(사이버불링 : 사이버상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을 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것들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왜 인터넷에서 그런 짓을 했냐고 타박만 들을 것 같다. 주위에 말할 곳도 없어 혼자 끙끙 앓는 경험들을 한 번씩 겪는다. 그 뒤로는 웬만하면 나서지 않으려 한다.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겪어본다. 다 비슷하구나,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늘 팩트체크를 중요시하며, 항상 의심을 놓진 않는다. 


 타인에 대한 존중들에 비해 본인에 대한 존중은 많이 없는 것 같다. 늘 본인의 말 한마디, 글 한 글자가 어떤 것에 대한 혐오를 하진 않을까 염려하고 경계하지만 자기혐오에는 둔한 편이다. 여기저기 잘 적응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멘탈은 약하다. 남들을 이해해주다가 자기 이해는 뒷전이 돼버린다. 그래서 Y들은 종종 주인공들보다는 조연들에 더 이입한다. 웹툰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주인공 외 인물들의 서사가 Y들의 공감을 더 얻는 경우도 많다. 몇 분 나오지 않는 조연들의 가정사가 펼쳐지면 난 저 조연이 저렇게 된 것을 이해한다와 못한다로 인터넷에서 논쟁이 일어난다. 아마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예상치 못한 전개일 것이다. Y들은 본인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미디어 등을 통해 자기 투영을 하고 쉽게 공감하는 것 같다. 늘 본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다.


 미디어에서 Y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땐, 힘든 세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고 취업난, 경제난, 이제는 코로나. 그러나 정작 Y들은 힘들긴 한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다 힘들지, 뭐. 본인세대들도 힘들지만, 다른 세대들도 이해하려 한다. Y들이 이해심이 넓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습관적인 이해다. 윗세대들은 내 자식들에게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은연중 Y들에게 효도를 강요해왔다. 돈이든, 말로든 꾸준히 해왔고, 현재진행형이다. 듣고 자란 Y들은 자의든 타의든 서서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윗세대는 그렇게 이해하고,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지. 아랫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다. 어차피 그들이 보기엔 똑같을 것이다. 어쨌든 Y들은 습관적으로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중간에 끼어있는 본인들이 제일 힘든 것을 안다.


 Y들은 앞서 말한 정보들의 활용으로 X세대들보다 일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Z세대들만큼 뚜렷하게 내 의견을 내진 못한다. 약간의 유교와 도의에서 늘 갈등한다. 이렇게 말하면 싸가지없어 보일 것 같고, 그래도 윗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생각이 들어 정신적으로 좀 힘들어도 참는 쪽을 택한다. 회사든, 조별과제든 설치면 나 혼자 덤터기 쓸 것을 안다. 일은 적당히 요령껏 하는 것이 편한 일임을 알고 일을 잘한다 하더라도 너무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것도 안다. 답답하면 답답한 사람이 나서겠지, 그게 내가 되진 말아야지, 하는 것이 기본값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살아가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Z세대와 '겸손한 것이 미덕'임을 강조받은 X세대 사이에 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Y들은 그래서 일이 재미가 없다. 일은 일대로 끝낸 후,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을 중요시 여긴다. 야근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다. 누군가에겐 Y들이 정이 없고 희생을 하지 않는 세대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Y들은 희생의 끝이 결코 좋지 않음을 이미 많이 보고, 겪고, 들어왔다. Y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 외의 남은 시간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에 대해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 같다. 


 어차피 Y들의 이야기는, 어느 특정 시기가 지나면 내가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글임을 안다. 청년이라는 기준조차 법적으로 숫자가 정해져 있다. 나도 ‘찐’Y라 ‘꼰대’가 되는 것이 무섭다. 지금, 쓸 수 있을 때 써야 하고 남겨놓을 수 있을 때 남겨놓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