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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Jul 02. 2024

진주 목걸이와 삼성의 애니콜 신화

엘리자베스 1세 초상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이다. 그녀는 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었던 만큼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다. 이 초상화에는 그런 힘이 보석으로 드러난다. 커다란 다이아몬드부터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진주가 줄줄이 엮인 세줄의 목걸이까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듀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다. 이 시기 보석은 재물로서의 가치 외에도 여러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것인데,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 아닌가? 이 초상화의 큼지막한 다이아몬드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석들은 그런 용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보석의 또 다른 역할은 동맹이나 계약의 성사를 알리는 상징이다. 진귀한 보석을 보냄으로써 자신의 제안이나 요구의 진정성을 내보이고 이걸 받아들임으로써 요구와 계약이 성사됐음을 인정하는 용도가 됐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엘리자베스 여왕은 보석 중에서도 진주를 사랑했다. 또 진주에 대한 집착도 강했고 전해진다. 물론 진주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여성들이 사랑하는 보석 중 하나이다.  진주가 미와 여성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조개에서 나올 때 흘린 물방울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신화가 존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에는 진주의 가치가 무척 높았다.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천연 진주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초상화에 그려진 크기도 크고 모양도 완벽한 진주는 구하는 게 하늘에 별따기였다. 희소성은 가격과 소유욕을 자극하기 마련인데, 광물인 다른 보석들은 종종 대규모 광맥이 발견돼 대량 공급이 이뤄졌지만 진주는 살아있는 생물을 통해 얻는 부산물이니 이마저도 어려웠다. 진주의 크기는 겹겹이 쌓인 세월의 힘이고 완벽한 동그란 모양의 진주는 엄청난 행운을 동반해야 가능했다. 다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진주에 대한 집착은 단순히 이런 진주의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라 페레그리나'라는 진주와의 악연(?)도 영향을 미쳤다.


경매에 나온 라 페레그리나

엘리자베스 여왕과 '라 페레그리나'의 악연

천연진주가 그렇게도 귀했던 16세기 중엽 한 노예가 파나마만 마르가리타 섬 해안에서 10g에 달하는 주먹만 한 크기의 천연진주를 발견한다. 이 진주는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에스파냐(스페인) 관리인에 의해 그들의 국왕에게 받쳐지는데,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스페인어로 순례자라는 의미의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라는 이름을 얻는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이 진주의 악연은 막장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에스파냐(스페인) 왕가의 소유였던 이 커다란 진주는 펠리제 2세가 영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영국의 국왕인 헨리 8세의 딸, 메리 1세에게 청혼 선물로 준다. 메리 1세는 이걸 목걸이로 만들어 하고 다녔는데, 그녀의 이복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가 매우 부러워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시녀였던 엔블린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는 사이가 안좋았다. 펠리페 2세의 훌륭한 청혼 선물에 비해 메리 1세에 대한 그의 마음은 그리 깊지 않았는지, 결혼 후 그는 영국에 거의 머물지 않았다. 헨리 8세가 권력 다툼에 밀려 세상을 뜬 후 메리 1세는 왕위에 오르지만 지병으로 4년 만에 숨을 거둔다. 메리 1세는 유언으로 '라 페레그리나'를 자신이 죽으면 펠리페 2세에게 돌려주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가 이 목걸이의 소유자가 되는 게 싫어서라는 해석이 많다. 어쨌든 이 진주 목걸이는 펠레페 2세에게 돌아갔고,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올랐지만 탐내던 라 페레그리나를 갖지 못했다. 기회는 있었다. 펠리페 2세가 메리 1세가 죽고 난 뒤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도 이 진주 목걸이를 선물하며 청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거절했다. 다만 라 페레그리나 같은 값진 진주를 탐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욕망은 악탈(?)로 드러난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초기 영국은 해적들을 활용해 해상무역을 장악한 에스파냐를 괴롭혔다. 많은 보물을 약탈했는데 특히 진주는 무조건 빼앗으란 지시가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영국이 해상무역을 장악해 대영제국이 되는 출발선에는 해적의 활약(?)이 있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라 페레그리나 같은 진주를 얻고자 한 욕망은 해적들이 맘껏 활동하는 배경이 돼 줬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 엘리자베스 손에

이런 스토리를 지닌 라 페레그리나는 300여 년이 지난 1969년이 돼서야 엘리자베스의 소유물이 된다. 물론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 다른 엘리자베스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의 남편인 리쳐드 버턴이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해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보기 드문 크기의 순도 높은 진주 목걸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받기 충분했지만 역사적 인물들이 엮인 스토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유명세까지 더해져 더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때부터  '라 페레그리나(순례자)'라는 이름 앞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라는 수식어까지 붙는다. 그 후 2011년 파리의 크리스티 경매에 라 페레그리나가 등장해 또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익명의 낙찰자가 이 목걸이를 받아갔고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은 누구 손에 있는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진주를 불태웠던 미키모토

미키모토 코우키치는 진주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생명공학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미키모토라는 진주 판매 회사를 설립한 사업가이다. 천연진주의 희귀성이 진주의 가치를 떠받치고 있던 시대 양식 진주의 등장은 악몽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진주 시장은 양식 진주 등장 초기 가격 폭락 등의 혼란은 있었지만 이내 가치를 회복하고 수요도 유지됐다. 도리어 시장에선 천연진주가 설자리를 잃고 양식 진주가 더 비싸게 거래되는 흥미로운 현상도 벌어졌는데, 이런 과정에 미키모토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키모토는 진주 양식을 성공시킨 의지의 생명공학자이면서 보석시장 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꽤 뚫어 본 천재 사업가이다. 그는 크게 두 가지에 주력했는데, 우선 양식진주는 가짜진주라는 인식을 깨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다양한 연구논문을 통해 양식진주가 인공의 창조물이 아닌 천연진주와 동일한 것임을 증명했고, 천연진주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답다는 점도 강조했다. 양식 진주임을 숨기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표시하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양식진주가 대량 생산되긴 하지만 완벽하고 희소한 상품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대중에 심으려 노력했다. 소유하고 싶은 완벽한 진주를 노출시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고품질 양식진주 가격을 비싸게 유지 시켰다. 실제 그는 다이쇼렌이라는 최고 품질의 진주 목걸이를 제작해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할 뿐 절대 팔지 않았다. 구매 요청이 쇄도했지만 그는 절대 이 목걸이를 팔지 않았다.

72만 개의 진주를 태우는 미키모토

미키모토가 벌인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진주를 태우는 화영식을 했다는 건데, 자신들이 판매하는 진주의 완벽성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 모양이 이상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진주 72만 개를 기자들을 모아 놓고 태웠다. 진주는 조개가 만들어내는 부산물로 광물과 달리 수분이 함유돼 있다. 열을 가하면 모양이 변해 망가져 버린다.  어쨌든 이런 이벤트는 고도로 계산된 미키모토의 홍보전략이었고, 이를 통해 미키모토는 자신이 생산하는 양식진주의 품질이 완벽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었다.


삼성의 애니콜 화영식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고 이건희 회장. 그가 남긴 여러 일화 중 대표적인 걸 꼽으라면 1993년 혁신과 변혁을 강조한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1995년 애니콜 신화의 기반을 닦은 '애니콜 화영식'이다. 프랑크푸르트선언은 이건희 회장이 남긴 명언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문장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삼성의 혁신과 변화의 필요성을  짧지만은 강력한 문장으로 표현해냈다.


애니콜 화영식은 삼성이 1993년 국내에서 휴대전화를 처음 선보이고 2년 뒤인 1995년 벌어졌는데, 모토로라 등 내로라는 글로벌 기업들 뒤쫓기 급급했던 삼성의 절박함이 보여진 사건(?)이다. 삼성은 상대적으로 브랜드도 약했고 품질도 떨어졌다. 애니콜 화영식의 결정적 계기는 삼성의 애니콜 휴대전화 불량률이 10%를 넘어서면서다. 대량생산에 무게를 뒸던 삼성을 품질 중시 경영으로 돌린 변곡점이기도 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엔 머리에 품질 확보라 적힌 띠를 맨 직원들이 도열했고, 15만 대의 애니콜 전화기를 쌓아 불을 놓았다. 몇몇 직원들은 해머를 들고 불량 제품을 부수는 쇼(?)까지 감행한다. 이때 불태운 제품들을 돈으로 계산하면 150억 원 달한다고 한다. 다만 어차피 불량 딱지가 붙은 제품이니 가격이 중요했겠는가? 자기 몸 불살라  삼성의 품질 중시 경영으로의 전환을 대내외에 알렸으니 말이다. 삼성의 품질 완벽주의를 말할 때면 지금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고 이건희 회장의 진주 사랑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미키모토 고우키치의 진주 소각쇼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진주 양식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고 천연진주 위주의 시장을 양식 진주로 바꿔 놓기 위해 소각쇼라는 다소 충격적인 이벤트까지 했던 미키모토를 고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림출처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elizabeth-i-1533-1603-0011/kgEm5H1k6Wb0Qg

고 이건희 회장 프랑크푸르트선언

https://youtu.be/-k6spS-Wwhg?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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