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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Sep 30. 2023

므레모사 - 김초엽

므레모사

김초엽


김초엽의 작품은 늘 사람을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므레모사>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미지의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사실 재난이 일어난 곳의 한복판으로 '투어'를 간다는 것 자체가 영 께름칙했지만, 단순히 재난을 유흥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는 걸 믿었기 때문에 기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므레모사>를 읽으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곳을 '여행'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좀체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나라 정부가 안전을 보증한다고 떠들어봐야 나는 결코 갈 일이 없는 곳이고 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곳이기 때문에. 그런데 넷플릭스 '다크 투어리스트'라는 다큐멘터리같은 게 있는 걸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재난, 재앙의 한복판이었던 곳을 여행하고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정말이지 기이하고 오싹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재난과 재앙에 덧없이 사라진 생명들을 안타까워하고,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리는 의미에서라면, 어느 정도의 교육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마음가짐이 달랐을 것 같다. 하지만 <므레모사>를 가려고 모인 사람들은 (적어도 유안과 레오는 제외하면) 그런 목적보다는 개인의 호기심, 여흥을 위해서 가려는 심보가 더 큰 것 같이 느껴졌다. 연구목적으로 온 이시카와 마저도 의도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주인공인 유안은 이런 사람들과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유명한 무용수였으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사용하는데, 간간히 드러나는 유안의 과거와 심리를 읽으며 퍽 고단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를 딛고서도 재활에 성공해 훌륭한 무용수로 다시 한번 정상에 선다는 타이틀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곤하지 않았을까.

유안에게 향하는 시선은 사고 이전과 이후가 너무도 달랐을 것이다. 장애를 고난과 역경으로 치환하며, 그것을 극복해서 정상성 궤도에 올라야만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사례를 퍽 많이 보지 않았던가. 그런 성취조차 없으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은 쉽게도 폄하된다. '정상이 아닌 것'으로.

한때 한국에 유행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한국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폐라는 장애가 있지만 머리가 비상하게 좋아 한 사람의 몫을 해내야만 비장애인의 세계인 우리 쪽에서 너를 기특해하며 받아주겠다는 시혜적인 태도조차 거북하기 그지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재미있게 봤지만) 이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을 향해 '우영우처럼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면 우리가 어련히 받아줄텐데 시끄럽게 떠들며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며 욕하는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오지 않는다.


P. 114.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작품 속 유안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 특히 '정상 궤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한다. 정상/비정상의 구분이 없는, 내가 보통일 수 있는 삶을.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유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말부에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떠올렸는데, 사실 <채식주의자>를 읽은 지 오래되기도 해서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는 건 아니었다. 누구도 해치지 않고 나의 가만한 삶을 소망하던 주인공의 욕망만이 느낌으로 남아있었는데, 그게 <므레모사>의 유안의 욕망과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므레모사>에는 헛점이랄지 설정 구멍이라고 해야할 만한 부분들이 간간히 보인다. 또한 설명되지 않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지점들도 많았다. 한국인 영상제작자의 이야기라던지, 기자 탄의 사연같은 것, 혹은 레오의 연인은 어쩌다가 므레모사까지 가게 되었는지, 레오는 어떻게 '커맨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약을 손에 넣었는지 등등. 현재 사회 문제를 짚어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상할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두어서인지 다 읽은 후에도 여운이 남았다.

얼마나 즐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영감을 얻었다는 넷플릭스 '다크 투어리스트' 시리즈를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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