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을 되찾고 싶어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화제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정말로 읽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책 내용의 일부가 인용되어 많이 돌아다녔고, 그래서 읽기도 전에 이미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한몫했기 때문인데, 집중력의 위기를 느끼는 독서모임 멤버들이 함께 읽기를 원해 읽게 되었다. 사실은 나도 과거에 비해 내 집중력이 짧아진 것의 원인을, 그리고 해결책을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트위터나 다른 소셜 미디어에서 책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은 대부분 소셜 미디어의 해악, 숏폼의 범람으로 인한 집중력의 위기, 그리고 그러한 미디어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도록 기획되었는지가 중심이었다. 책의 초반은 분명 그러한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특히 6장에서 설명하는 '무한 스크롤'의 내용은 머릿속이 멍해지게 만들었다. 처음 '무한 스크롤'을 생각해낸 사람은 사람들이 웹페이지를 사용하기 쉽게 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꼭 인간성에도 좋은 것은 아니(P.177)"었다. 이 '무한 스크롤'이 사람의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빨아들이는지는 우리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는, 그래도 나 정도면 미디어 사용 시간을 잘 제어하고 있다 자만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독서 노트를 쓰면서는 1분 마다 한 번씩 트위터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싶어서(확인 할 것도 없으면서!) 자꾸 안달이 났다. 결국 인스타그램을 지우기에 이르렀고, 들여다보지 않은지 하루가 지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는 자기 위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 114 우리가 해야하는 많은 일이 따분할 만큼 뻔하다. 속도를 늦추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잠을 더 자면 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정반대로 하고 있다. 속도를 높이고, 전환을 더 많이 하고, 잠을 적게 잔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행동 사이의 괴리 속에 산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그 괴리를 만드는가? 사람들은 왜 명백히 집중력을 개선해 줄 행동들을 하지 못하는가? 어떤 힘이 우리를 막고 있는가?
저자는 속세(?)를 떠나 3개월을 인터넷 없이 살아보는 실험을 한다. 정말 해야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익하고 황홀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이대로 집중력을 끌어올린 삶을 살고자 다짐하는데, 현실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다시 관성처럼 이전의 삶, 집중력이 파괴된 삶으로 순식간에 돌아가고 만다. 그렇다면 이것은 개인의 의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개인이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면서도, 집중력의 문제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짚어낸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한 시름 덜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9장에서는 딱히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소셜 미디어를 정부가 운영하거나 규제, 통제 하고, 혹은 '구독제'를 통해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직접 지불하게 하며 방향성을 재설정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허황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제안들의 문제점도 함께 제시하고, 또 그 문제점의 해결책도 같이 언급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뜬구름 잡는 것만 같았다.
집중력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들로 소셜 미디어나 테크 기업들의 노력도 꼽았지만, 수면이나 근무 시간, 그리고 식단 이야기도 함께 던졌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것 같은, 적정한 수면이 일상에(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거나, 균형잡힌 식사를 해야 뇌가 잘 발달한다는 뻔한 이야기들은 읽으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아이들'의 문제로 치환하게 되니 또 다른 이야기처럼 들렸다. 어른들이 겪고 있는 집중력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끼치는 영향, 그리하여 아이들의 집중력에 끼치는 해악들을 짚어내며, 과거에 비해 ADH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통계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제껏 주변에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꽤 들었는데, (심지어 파트너는 틱톡에서 ADHD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영상들을 내게 보내주기까지 했다.) 실제 책에서 ADHD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읽어본 적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중반부를 읽으며 잃을 뻔한 집중력을 후반부에는 되찾을 수 있기도 했다.
책은 좋은 내용도 많았지만, 논란거리가 될 만한 구석도 꽤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같이 이야기하니 생각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은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아마 이 책을 쓴 저자도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정말로 읽는다는 것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어가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저자가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근거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저자가 '사실'이라며 연구 결과나 통계를 자료로 인용을 하더라도, 그 연구 결과나 통계 자료의 신뢰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읽는 것이다.
P. 119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는 자신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차분하고 침착하게 인생의 긴 시간을 한 가지 주체에 바치고, 그 주제가 우리의 정신에 스며들게 한다. 독서는 지난 400년간 가장 깊이 있는 인류 사상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현재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독서를 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비율도 감소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집중해서' 독서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도 (비판 지점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독하기를 바란다. 실제로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과, 타인이 요약해 준 것들을 슬쩍 훑기만 한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직접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