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직도 유튜브는 설거지할 때 빈 공간을 채워주는 영상 매체 중 하나일 뿐이었다. 구독하는 채널도 많지 않고, '구독'한다고는 해도 꾸준히 챙겨보는 채널은 더더욱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채널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영상 때문이었다.
https://youtu.be/2fVgRqYEikc?si=AQDuG9_B8lAXGrLN
말하기, 듣기, 쓰기 중에서 쓰기가 중요하다고 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동물과 비교했을 때 인간은 문자라는 게 있어 정보가 후대로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고, 그렇기에 쓰기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듣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써야'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잘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결국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고 잘 들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빠지지 않았다.
이 영상을 시작으로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를 구독하고 꾸준히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시청하기에 이르렀는데, 대게는 15분에서 20분 정도의 부담 없는 분량인 데다가, 오래도록 교수를 하신 분 답게 편안한 목소리로 핵심을 전달하는데 탁월했다. (모든 교수가 최재천 교수님처럼 잘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읽게 된 '최재천의 곤충사회'는 유튜브로 설명한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 곤충들의 사회 군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톺아보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확실히 활자로 된 책을 읽으니 머릿속에 정보가 더 오래 남았다. 가령 개미는 후대의 여왕개미가 원래의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다면, 꿀벌들은 혼인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원래의 집을 내어주고 어미 여왕벌은 일벌의 절반만 데리고 집을 나감으로써 '왕위 승계'를 해준다는 정보는, 어떤 여운을 주기까지 했다.
P. 122 개미는 농사를 지을 줄 알고 낙농업을 하고 대규모 전쟁도 일으키고 노동력이 부족하면 이웃 나라 개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어서 부리기도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우리 인간만이 하는 것 같은 아주 고차원의 분업 제도를 개발한 동물이 개미입니다.
개미 사회에 흥미를 느껴 연구를 시작한 최재천 교수님이 설명하는 곤충의 세상은, 자연은, 생각보다도 더 잔혹하고 혹독했으나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마치 청소년기로 돌아간 것처럼, 나도 이 공부를 해보고 싶다, 연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두근두근 하기도 했다.
특히 개미 사회의 고차원성을 설명한 이 구절에서는 최근에 본 개미가 짐을 들고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인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개미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차이점이 거의 없어서, 이런 부분에서 확실히 인간만이 문제해결 능력이 발달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명에게 다정하지 않고, 오히려 생명이 살만하면 시련을 던진다. 인간은 어떻게든 그 환경에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그 환경적인 위협과 요인을 억지로 없애는 쪽으로 발전을 해왔다. 그로 인해 이제는 그 환경의 역풍을 고스란히 다시 맞고 있다.
박쥐가 옮기는 바이러스, 멧돼지가 옮기는 바이러스, 혹은 그 어떤 다른 동물들이 옮기는 수많은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들은, 사실 인간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았다면,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면, 하늘을 넘나들지 않았다면, 향토병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멧돼지를 죽이고 있'다. 마치 그 동물들이 전염병의 근본적인 원인인 것처럼.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침을 놓는다. 지구는 괜찮을 것이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에서 스스로 회복했던 것처럼, 인간이 일으킨, 일으키고 있는 이 대멸종에서도 결국 회복할 것이다. 멸종하는 것은 인간 그리고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들 뿐일 테니까.
자연의 잔혹함을 되새기며, 그리고 자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다시금 돌아보며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어도, 역시 활자를 읽는 것만큼 뇌를 환기시키기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