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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키 Nov 10. 2023

랩 가사를 번역한다는 것

나스의 <Illmatic> 가사를 번역할 수 있을까?

“항상 1등인 영화란, 꼭 그런 사랑처럼 내 안에 있는 남의 영화, 그렇게 가장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나와 가장 친밀한 영화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영화라면 영화에 관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나만의 기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것은 늘 나만의 1등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지훈, <내가 쓴 것>


나한테 늘 1등인 앨범은 나스의 <Illmatic>이다. (편의상 <일매틱>으로 부르겠다.) 대략 8년 전쯤 도대체 나에게 있어 힙합은 무엇인지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힙합을 내 취향의 지표로 삼게 만든 작품이며, 지금까지 수백 번을 듣고 또 들어도 늘 헤드폰을 떼어낼 수 없는 전율과 쾌감을 주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일매틱>을 처음 들은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전인데 그때는 순전한 감상보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들었다. 앨범이 내 가슴에 다가온 계기는 2016년 서울힙합영화제에서 본 <일매틱> 다큐멘터리다.)


나는 수도 없이 쏟아지는 이런저런 힙합 앨범들을 감상하고 힙합 앨범에 대한 접근을 하려고 할 때도 프리모와 라지 프로페서, 피트 락, 큐-팁의 비트 위를 마치 비밥 트럼펫터가 연주하듯이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질주하는 나스의 플로우를 우선 떠올린다. 가사와 스토리텔링에 대해 생각할 때도 욕조에 몸을 담그고는 돔 페리뇽을 홀짝이면서 영화 <간디>를 보는 나스의 의도를 생각한다. 사랑과 폭력의 조화와 부조화에 관해 골치를 앓을 때도 마약 거래나 도박, 강도질이 도사리는 당시 뉴욕 어반(urban)의 파편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것을 랩이라는 예술 형식에 담아서 혼자 힘으로 성공을 이루려는 나스의 내면을 상상한다. 좁히기에는 너무 먼 지구 정반대 편 문화권 사이에서 이해의 다리를 놓으려 애쓸 때에도 언제나 <일매틱>의 서사가 갖고 있는 시대성과 보편성을 그 어떤 앨범보다 가장 먼저 생각해 내는 것이다.


나스의 <일매틱> 가사를 제대로 번역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그래서 올해면 대학 막학긴데 요즘 뭐 하며 지내냐, 묻는 주변에게 나는 항상 <일매틱>을 번역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답하곤 했다. 물론 힙합 가사 번역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이따금 가사를 번역하여 업로드하고 있긴 하다만, 내 <일매틱> 프로젝트의 실제 진행은 제로에 가깝다.


이유 아닌 변명을 말해보자면, 랩 가사를 번역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랩 가사를 읽었을 때 원문의 모든 뉘앙스나 느낌, 다 듣고 나서의 감동을 과연 받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국내 힙합 아티스트의 가사를 보더라도 미국 힙합에 영향을 받은 번역투 가사가 지배적인데 '우리말'로 랩 가사를 역하는 의미가 있는 일일까?


김선형 번역가의 문학번역워크숍을 들으면서 나의 이러한 좌절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워크숍은 잡다한 원문 해석과 번역 요령보다는 철저한 원문 이해와 우리말 표현 위주로 진행한다. 매주 텍스트를 읽고 번역을 하는데 6주 차가 된 지금 번역이 조금은 친숙 해졌다. 다시 <일매틱>으로 돌아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만일 내가 그 텍스트(여기서는 랩 가사)에 나의 애정과 이해가 동시에 있다면, 나만의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야에 속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일매틱> 가사 번역의 버전은 사실상 하나다. 힙합 엘이에서 번역을 맡았던 댄스디(DanceD)의 번역이다. ‘댄스디 키즈’로서 나는 영어 가사에 친숙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 힙합 엘이 가사 번역 게시판을 들락날락했다.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최대한 빠르게 번역을 한다고 말한 대목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렇게 방대한 양 가사를 번역할 수 있었을 거라… 정말 리스펙 한다) 만약 번역가로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댄스디의 버전과는 멀리 떨어진 번역이다. 물론 원문을 해칠 가능성이 있겠지만은 최대한 내가 <일매틱>을 ‘읽었을 때’ 느꼈던 전율과 쾌감을 만들고 싶다.


뭐, 또 저번처럼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내 번역과 내 글로 <일매틱>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번역가는 문맥을 번역하는 사람입니다. 번역가는 의미를 재현하기 위해 유추를 사용합니다. 번역된 언어의 독자가 원저작 언어의 독자와 같은 식으로 뜻을 알고, 이것을 같은 식으로 ‘들을 수 있는’ 어법과 문체를 번역된 언어에서 찾으면서 그 의미를 재현하려 유추합니다. 이를 위해 번역어의 구조와 미묘한 차이에 대한 모든 감각과 일깨울 수 있는 감성을 최대한 동원해야 합니다.”

                                                                                                    이디스 그로스먼, <번역 예찬>


*2, 3번째 문단은 지금은 돌아가신 이지훈 기자의 글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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