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디자인도 굿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고 주장하였다. 사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원리는 내적인 필요성, 즉 구조적이고 기술적인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뜻을 가진다고 하였다. 비슷한 원리로, 세상에 존재하는 디자인의 형태는 모두 기능을 따라가야 할까? 더 나아가, 기능을 따르지 않은 형태를 가진 제품은 ‘굿 디자인’에 소속되지 않는 건지 궁금하며, 굿 디자인의 정의는 대상의 목적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다.
디자인의 정의에 대해서 논해본다면, 오래전부터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문제 해결’의 의미로 정의되고 있다. 콜로미나 위글리에 따르면, 디자인은 기본적이고 영구적인 ‘인간적 욕구’, ‘인간적 스케일’, ‘인간 본성’, ‘인간의 뇌’, ‘인간의 영혼’등을 보호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해왔다고 한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보호’의 의미는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본다는 뜻이며,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의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타격을 받지 않도록 유도하는 상황을 ‘보호’하는 행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하여, 타격을 받지 않는 행위가 과연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행위일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고를 하거나 행동에 있어서 오로지 ‘편안함’만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있는 요소일까? 인간은 본디 나약한 존재이며,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나쁜 일들을 겪게 된다. 콜롬비아 대학교 르네 헨 신경 과학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어서 생존에 필요한걸 우선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위기나 공포스러운 경험은 미래에 같은 경험을 겪지 않도록 더 중요한 정보로 여겨진다고 한다. 즉, 정서적으로 어떠한 일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 타격을 받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매몰이 되며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여성주의적 디자인을 예로 꼽아볼 수 있다. 18세기의 디자인은 남성주의적 디자인 위주로 디자인되어왔으며, 20세기 중후반에는 위와 같은 다양한 여성 인권 운동이 있었고, 이후로부터 여성들이 디자인계에서 더욱더 활약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1928년, 프랑스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페리앙 디자이너는 조절 가능한 긴 의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샤롱(long chair)을 디자인하여 여성들의 신체조건에 맞게 편안한 자세로 앉을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하였다. 이처럼, 여태까지의 많은 디자인들은 사람을 신체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났다. 그렇다면, 불편을 가함으로써 사람들의 정서적인 생각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제품들이 생기는 것은 어떠할까?
사람이 신체적으로 보호받는 일 역시 당연시되어야 하지만, 정서적으로 단단해지는 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단단해지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는지와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인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불편한 디자인을 직설적으로 마주해 보면서 나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후에 이러한 불편함을 겪지 않기 위해서 행동해 보면서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는 행위로써 충분히 성과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조건 기능을 따른 디자인만이 ‘굿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아가 굿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오창섭은 굿 디자인의 기준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말하였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동조’란 집단의 압력 아래에 개인이 집단이 기대하는 바대로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인간의 ‘동조’하는 행위는 솔로몬 애시의 동조 실험을 통해서 1952년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정답이 명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이 생각하는 답을 바꿔 대답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인 결과를 근거해서, 어떠한 집단에서의 권력자에 의해 굿디자인의 정의를 내려버리게 된다면 디자인의 가능성이 제한적으로 될 수 있기에 예측할 수 있다. 하여, ‘동조’ 하지 않고 자신의 디자인적인 스타일 역시 만들어 나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며, 동시에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정서적인 방면에서 역시 훈련하는 과정 역시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강조시키는 제품들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속해서 이러한 제품에 있다면 안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디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정서적으로 ‘보호’ 하기 위해서는 계속 같은 위치에 자리하는 것이 아닌, 변화를 통해 불편함을 느껴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편한 디자인에 대해서 후속적으로 어떻게 조치를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 또한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숙제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