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안예쁘신가요?”

주인공병과 답정너의 폐해

by 김삼월

가끔 호의의 탈을 쓴 '배역 섭외'를 받을 때가 있다. 대개는 서두가 화려하다.


"이번에 너 생각해서 가져온 기회야. 잘 봐봐. 이거 아무나 안 주는 거거든?"


하지만 그 문장들의 행간을 읽어보면 본질은 꽤나 투명하고 얕다.


“(내가 주연인 판에, 너를 조연으로 써줄게.)“


최근 나는 꽤나 아름다워 보이는 제안 하나를 거절했다. 상대방은 어쩌면 나에게 진짜 호의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진짜 날 생각해 주는 것이었다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긴 하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낡은 인맥을 동원해 생색을 내고, 나의 감사와 복종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것.. 같달까? 내가 꼬여버렸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런 시나리오는 이미 너무 많이 읽었었고, 그래서 나는 그 시나리오를 펴보기도 전에 다른 장소로 치워버렸다.



‘답정너’라는 비윤리적 문법



‘답정너’형 인간이 비윤리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대화의 목적을 교류가 아닌 ‘확인’에 두기 때문이다. 내가 던진 대답이 자신의 대본과 일치하면 흡족해하고, 예상 밖의 대답이라면 나를 무례한 사람이라고 공격한다.


“선생님은 저에게 예쁘다는 말을 왜 안하세요?“


살면서 내가 들은 가장 어이없는 말 Best 3안에

드는 말이다.(나머지 두개는 천천히 공개할 예정! 기대해주시라!) 임용준비를 할 때, 그러니까 내가 스터디 장으로 있었을 때다. 스터디원이었던 그 사람은 스터디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었다.


‘아니 도대체 왜 예쁘다고 해야하는데요?’


자신이 주인공(그 사람)인 영화에서, 자신의 대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조연(나)은 명백한 퇴장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과 멀어졌다.


"내가 없으면 네 드라마는 완성되지 않아!"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진 않았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밤티나는 주인공의 최후


주인공 병에 걸린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객관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고 타인을 조연 취급하기 때문에, 자신이 건네는 썩은 물이 누군가에게는 성수(聖水)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내민 썩은 물에 발을 담그게 된다면, 나라는 브랜드의 청정함은 오염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대본 밖으로 걸어 나가는 쾌감


세상은 넓고, 촌스러운 연극은 도처에 널려 있다. 왕 노릇을 하며 남의 성장을 위협으로 느끼는 이들에게 일일히 반응해 줄 의무는 없다. 나의 무반응이 그들이 정보를 감추게 만들고, 또 견제구를 던지더라도 괜찮다. 그럴수록 나는 더 나를 정제하면 되니까.


당신의 대본은 버렸다. 나는 이제 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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