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가 좀 촌스럽나요?

세련됨에 대한 강박

by 김삼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촌스럽다 ‘라고 평가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말을 들었을 때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내가 촌스럽다고? 웃겨! 지는?‘


’촌스럽다‘는 말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저 가벼운 농담으로 던지는 말일수도 있지만, 이 말은 자신의 취향이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수치심을 주기도 한다.(요새는 ’밤티‘라는 용어를 통해 촌스럽다는 말을 좀 더 순화시키고는 한다.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지 않다.)


우리는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촌스러움'을 벗어던지고 '세련됨'을 입으려 할까? 이것은 현대인에게는 강박으로 나타나고는 하는데, 이 갈망의 이면에는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선, 인간의 생존 본능과 사회적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1. 소외에 대한 공포 (생존 본능)



아마도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무리에 속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세련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을 죽음으로 인식하고는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져 오는 인간의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세련됨'이란 ‘지금 이 시대, 이 집단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신호이다. 반대로 촌스러움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거나,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표식이 된다. 우리는 촌스러움을 지적받을 때 단순히 옷차림이 아닌, "너는 우리와 코드가 맞지 않아"라는 무언의 배제 신호를 감지하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2. 통제와 정제



세련됨(Sophisticat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순수함을 잃다', '복잡해지다'라는 의미가 섞여 있다. 현대적 의미의 세련됨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상태'를 뜻한다.


촌스러움은 종종 과잉된 장식, 과도한 색깔, 혹은 숨기지 못한 날것의 감정과 연결된다. 반면 세련됨은 감정과 취향을 적절히 통제하고 '편집(Editing)'한 상태이다. 그래서 ’세련됨’은 ‘통제‘와 ’정제‘의 결과이다.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철저한 계산이고, 그러한 계산 뒤에 나온 결괏값을 우리는 ’세련됨‘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련됨이라는 갑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흠결이나 나약함을 감춘다. 감추고 싶은 외적 컴플렉스 뿐만 아니라 성격적 결함도 함께. 특히 세련된 태도는 타인에게 틈을 보이지 않게 하여, 사회적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3. 계급과 자본의 증명 (구별 짓기)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은 계급을 구별 짓는 도구"라고 했다.


일단 그것은 시간과 돈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세련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학습할 시간, 그것을 향유할 경제적 여유, 그리고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아보는 '안목'이라는 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세련된 취향’이란 그러한 자본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뒤쳐진 계층’ 아님을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세련됨을 갈망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뒤쳐진 계층'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촌스럽지 않다"는 안도감은 곧 "나는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은밀한 만족감을 준다.



역설: 촌스러움이 가진 생명력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너무나 매끄럽고 세련되어질수록 우리는 다시 촌스러움(Retro, Kitsch, 날것의 감성)에 열광한다.


"세련됨은 차갑고 매끄럽지만, 촌스러움에는 체온이 있다."


완벽하게 세팅된 세련됨 속에는 '인간미'가 들어설 자리가 좁다. 우리가 오래된 사진 속 촌스러운 패션을 보며 웃음 짓거나, 서툰 손편지에 감동하는 이유는 그 속에 '계산되지 않은 진심'과 '무방비 상태의 솔직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촌스러움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어른의 세련됨은 유행하는 명품을 두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촌스러운 과거와 취향까지도 "그게 나였어"라고 웃으며 인정할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자신의 촌스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그 사람은 가장 독보적이고 세련된 존재가 된다.



혹시 당신의 기억 속에 '당시에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던 촌스러운 순간'이 있는가? 그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강박적인 세련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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