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뼈 빠지게 구르는 호모 사피엔스

위대한 시체가 되기 위한 쿨타임

by 김삼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이 낡고 닳은 유행어가 명치끝을 후벼 파는 잔인한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3월의 시작과 동시에, 내 안의 우아하고 평화로운 자아는 강제 퇴출당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유지되던 나의 작고 소중한 루틴들은 형체도 없이 증발했다.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생활, 아침에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며 사색에 잠기던 여유는, 알람을 예민하게 끄며 비명과 함께 일어나는 '생존형 기상'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마음에 드는 향수를 뿌리며 하루의 무드를 세팅하던 나는 어디 가고, 이제는 카페인 수액을 맞지 않으면 하루 종일 비틀거리는 좀비 한 마리만 남았다.


뇌척수액까지 말라가는 이 지독한 쳇바퀴 속에서, 문득 끈적한 현타와 함께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이 떠오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뼈 빠지게 구르는가?"


세상은 자꾸만 '웰빙(Well-being)'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유기농 식품을 씹어먹고 헬스장에서 무게를 치며 코어를 단련한다고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가? 어차피 건강하게 썩어갈 유기농 육체라면, 인간의 궁극적 미션은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말하는 웰다잉은 요양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곱게 눈을 감는 평화롭고 뻔한 엔딩이 아니다. '죽깔나게(죽여주게+깔끔하게) 죽는 것', 즉 '간지 나는 위대한 시체'가 되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나는 죽어서 나무위키 단독 문서(그것도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마비되는)를 남기고 싶다. 이 엉망진창인 세상을 내 손으로 기깔나게 리모델링한 후,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칠 때. 그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쿨하게 퇴장하겠다는 열망. 내 안에는 마블 영화 주인공 같은 웅장하고 거룩한 영웅심리가 펄떡이고 있다. 어쩌면 동네방네 "나 진짜 끝내주는 걸 남기고 화려하게 떠날 거야!"라고 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소문을 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런 뜨거운 야망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어떤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는커녕, 듀얼 모니터에 띄워진 업무 포털의 기안서 오타나 고치고 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출석부를 집어 드는 순간, 위대한 혁명가라는 내 본연의 정체성은 '자본주의의 성실한 톱니바퀴 1'로 전락한다. 세상을 뒤집을 철학적 사유는 "아, 오늘 급식 반찬 뭐지?"라는 거대한 난제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완벽하게 업무를 쳐내고 회의 시간에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내 웅장한 열망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잡무 밑으로 깔려서 완벽한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찮고 퍽퍽한 일상 밑바닥에 깔린 그 열망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겉보기엔 그저 서류 더미에 짓눌려 형체만 남은 하찮은 '불티'에 불과해 보일지 모른다. 당장 숨통을 조여 오는 새 학기의 압박 속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맨손으로 그 불티를 쥐어보면, 살점이 타들어 갈 정도로 여전히 아주아주 뜨겁다.


우리가 지금 당장 영혼 없이 타이핑을 치고, 무너진 루틴 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건 결코 현실에 순응해서가 아니다. 내면의 불티를 거대한 화염으로 키우기 위해, 세상을 바꿀 거대한 판을 짜기 위해 은밀하게 땔감을 줍고 있는 위대한 빌드업의 과정일 뿐이다.


언젠가 이 지독한 불씨가 세상에 멋지게 불을 지르고, 우리가 기막힌 웰다잉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찌질한 오늘은 위대한 시체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쿨타임이다.


그러니 타들어 가는 속을 부여잡고, 일단 내일 아침 알람이나 맞춰두자. 살아서 출근을 해야 폼나게 세상을 부수고, 가장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공지] 두 개의 에티카: 상수와 변수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