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AI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낮에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영화들을
저녁이 되면 거실에 이불을 깔고 긴 베게를 놓은 뒤 아빠와 누워 봤던 기억이 있다.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했다.
반지의 제왕, 쥬라기 공원, 매트릭스, 아바타, 마블 영화까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상상으로 가득한
거대한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다.
나도 그런 세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했고 당시에는 나에게 주어진 도구가 그림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배웠지만, 애석하게도 창작과 관련된 과가 아닌 디자인과에 가게 되었다.
당연히 디자인과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림은 내가 꿈꾸는 상상 속 세계를 표현할 도구일 뿐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기능을 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고,
철저한 시장 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적 사고부터 기울기 따위를 1mm를 더 깎느니 하는 문제로
씨름하게 되는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흥미도, 적성도 찾을 수 없었다.
애써 들어간 대학이 나와 잘 맞지 않자 방황이 시작됐다.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교 2학년때 단편영화 제작 워크샵에 참여해 단편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연출, 편집, 배우 캐스팅까지 모두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부터 내가 꿈꾸던 거대한 상상의 세계를 그리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너무 많았고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인원 통제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케이션을 정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당시 워크샵을 배우던 건물의 엘레베이터라는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코미디 단편을 찍었다.
내가 영화계 바닥부터 들어가 막내부터 조연출, 연출까지 10년의 시간을 견디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순간까지 갈 수 있을까를 현실적으로 고민해보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결국 영화가 아닌 글이라면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없으니 소설을 써보자라는 다짐으로 휴학을 신청한 뒤 6개월을 작가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때 나만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에는 실패했고, 만화를 그려보자며 친구를 꼬셔 내 스토리를 그리게도 시켜보았지만 하루 몇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고역을 친구는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어서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우선 대학 졸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꾸역꾸역 4년 과정을 마치고 난 나는 다시 영상계에 도전하기 위해 작은 회사의 유튜브 PD로 일을 시작했다.
일은 고되고, 페이는 적었지만 재밌었다.
관공서들의 각종 홍보 영상부터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했는데,
젊음의 패기와 똘끼(?)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당시 나를 비롯해 또래 PD들은 원하는 재밌는 영상을 맘껏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부터 편집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일의 야근, 주말 출근에 비해 너무나도 열정 페이였고 결국 그 생활에 지쳐
더 좋은 환경의 회사로 이직을 결심한다.
그러다 메타 버스 붐과 함께 버추얼 프로덕션에 알게 되었다.
정말 재밌게 봤던 만달로리안이라는 드라마가 세트장에서만 촬영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CG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제작을 한다면 현실적인 한계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언리얼 엔진이라는 프로그램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간 독학한 후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그 과정이 재밌고 뿌듯했다.
(언리얼 엔진 한 달 독학 후 만든 3D 애니메이션)
https://www.youtube.com/watch?v=J5Ko9OlhNyk
이 일을 계기로 CG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
CG 회사의 영상 기획자로 취직하게 되었다.
주로 게임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제작하는 일을 하게되었고,
이때 CG로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게 되었고 어느덧 나는 영상은 취미로 유튜브에 만들어 올리지만
본업은 브랜드 마케터가 되어있었다.
당시에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 및 영화 리뷰를 올리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조회수도 꽤 잘 나왔고 수익도 조금이지만 발생하고 있었다.
콘텐츠 특성상 늘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정보를 찾아서 콘텐츠로 만들어야 했는데
콘텐츠의 기원이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닌 남이 만든 이야기, 남이 하는 이야기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영화 리뷰 콘텐츠는 아무리 잘나가도 결국 2차 창작이었고, 나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본인만의 스타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영화 리뷰 유튜브 채널도 많지만)
내가 어렸을 적 봤던 영화들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 때쯤,
CHAT GPT를 시작으로 AI 기술이 갑자기 트렌드가 되었다.
AI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발전해서 어느덧 AI로 만든 이미지와 영상이 사람이 만든 것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괴물연구소'같이 AI툴을 활용해 본인이 좋아하는 이야기 소재로 영화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홀린 듯이 AI툴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고, 현재 취미로 운영중이던 유튜브 채널을 내가 만든 작품들을 올리는 채널로 개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채널로 성장해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나가야지, 라는 상상을 매일 같이 펼치던 나는 결국 작년 12월 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라는 분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레드 오션이라고 하는 유튜브 시장에서 AI 콘텐츠라는 소재는 생소하기도 했고, 아직 이 분야의 최고라고 하면 떠올릴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되고 싶었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감독으로 성장해 언젠가 넷플릭스에 내 작품을 올리는 날을 꿈꾸게 되었다.
자, 그럼 이 AI라는 툴을 가지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면 좋을까?
이제 내가 어떤 전략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는지
영상 기획부터, 영상을 어떻게 제작하고 만드는지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고난, 시련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