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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영화를 만든다면 무엇을 만들까?

AI 콘텐츠 초기 기획에 관하여

by 김씨네마

내가 AI 툴을 활용해 영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AI로 만든 숏츠 영상이 유행을 할 때였다. 예를 들면 '국가별 여신의 모습', '국가별 전사의 모습' 같이 한 주제로 국가별 특징을 담아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던지, 호랑이 + 코뿔소, 사자 + 독수리와 같이 동물의 종을 합쳐 상상 속 생물체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던지, 귀여운 동물들이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영상과 같은 것들이 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행처럼 번졌다. 이 밖에도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상상 속의 이미지나 영상을 쉽게 만들기에는 AI툴이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처음 보는 생소하고 신박한 이미지에 반응했다. 뿐만 아니라 챗지피티를 활용해 역사 주제로 대본을 작성한 후 이를 그대로 이미지로 만들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의 완전 자동화 숏츠가 해외에서 잘되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면 별다른 노력 없이 달에 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등 소위 어그로를 끄는 유튜브 영상도 많이 나돌았다. 나 역시 AI로 만든 영상들을 이와 같은 콘텐츠들로 접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그저 호기심에 비슷한 결의 영상들을 만들었다.


https://youtube.com/shorts/H7Gw1VPYCuQ

국가별 캡틴 아메리카

이때 국가별 캡틴 아메리카, 사이버펑크 세계관 속 해리포터, 쉬는 날 여가를 보내는 마블 히어로들 등 이미 유명한 IP의 캐릭터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당시 이런 콘텐츠 아이디어들을 떠오르는 대로 메모해두고 되는 대로 만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나 스스로가 흥미를 잃어 몇개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비슷한 영상들이 범람하면서 사람들에게 이제 이런 영상들은 식상해졌고, AI 숏츠의 인기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콘텐츠들은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옮기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내가 늘 꿈꿔왔던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에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흥미롭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연출의 요소가 있어야했다. 그때부터 AI 툴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AI로 상상하는 이미지를 다 만들고 영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 못할 이야기가 없으니 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할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할까는 아주 오래된 사람들의 공통 고민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 고민은 유독 어렵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두 지점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교집합을 찾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SF나 판타지 장르의 콘텐츠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런 장르에 끌리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AI 보다 카메라로 찍는 것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AI 툴을 쓰는 의미가 크게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내가 만들고 싶은 창작물의 시나리오 몇 개를 썼다. 말이 내가 만드는 창작물이지, 사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나 드라마, 애니와 비슷한 콘텐츠들이었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과 드라마 '만달로리안'과 비슷한 스페이스 오디세이 장르에 우주선을 입은 고양이와 같은 재밌는 캐릭터를 넣어 약간의 변형을 준다던지, 블랙 미러처럼 미래 기술 발달로 일어날 수 있는 도덕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던지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스토리텔링 형식의 AI 콘텐츠는 '보석상 강도를 잡은 골룸'이었다. 반지의 제왕 속 골룸이라는 캐릭터가 절대 반지라는 금반지만 보면 갖고 싶어 미쳐 날뛰는 특성을 이용해, 보석상을 턴 강도가 가진 금반지를 보고 얼떨결에 강도를 잡는 영웅이 되는 코미디 단편을 만들었다. 이 단편을 만들면서 왜 AI로 만든 스토리텔링 방식의 콘텐츠가 흔하지 않고, 숏츠를 주로 만드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AI 툴을 다루는데 미숙한 것도 분명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AI 툴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일관성 있는 비주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AI는 매 프롬프트를 이해할 때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앞뒤 맥락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그래서 내가 하나의 캐릭터와 하나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 캐릭터의 얼굴이 조금 달라진다던지 공간의 모습이 달라지며 미묘한 변형이 일어난다.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개되어야 하는데, 어딘가 어색한 결과물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이미지를 만들 때와 영상으로 만들 때 AI가 아직 할 수 없는 수많은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앞으로의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며 서술하도록 하겠다. 어찌저찌 완성된 결과물은 솔직히 말해서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어째, 만든 게 아까우니 일단 올려놓고 봐야했다. 양심 없게도 이런 결과물로도 조회수가 많이 나오길 바랬는데, 과연 구독자 1000명 언저리인 채널에서 만든 창작물을 사람들이 봐줄까? 아니, 사람들에게 노출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역시나 채널에 올리자 현실이 되었다. 나름 '반지의 제왕'이라는 거대 IP를 사용했음에도 두달간 조회수가 100 정도에 그치며, 1000명에게도 노출되지 않았다. (이 영상은 김씨네마가 아닌 다른 채널에 올렸었는데, 만들어둔게 아까워 최근 숏츠로 포맷을 변경해 김씨네마 채널에 업로드하였다.) 이 일로 내 창작물만으로 인지도를 얻고 채널이 성장하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뭐든지 빨리 시작하고 빨리 포기하기도 하는 내 성향이 발현된 순간이었다.

https://youtube.com/shorts/3IThGI9WoOg

골룸 강도_섬네일.jpg AI로 만든 단편 영화 'precious'


그렇다면 뭘 만들어야 나도 어느 정도 창작을 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도 필요하고 좋아해서 내 콘텐츠를 찾아볼까? 라는 고민을 계속 하던 중이었다. 그때 유명 소설을 실사화해 영상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세계 고전 문학 소설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인정 받는 좋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다면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면서도, 나도 창작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또 최근 책을 잘 읽지 않는 세대에게도 짧은 영상으로 책의 줄거리를 알 수 있으니 니즈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때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을 2가지 정했는데 첫번째가 '아직 유명한 작품으로 실사화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은 이미 영화가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도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따라갈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AI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AI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세계관이나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이 쯤에서 잠깐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한때 나는 '독서광'까지는 아니어도, '독서일반인' 정도는 될 정도로 책을 꽤 읽었었다. 많이 읽던 시절엔 한 달에 두 세권은 읽을 정도였으니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그게 내 독서 최전성기 폼이었다. 주로 읽던 책은 세계 고전 문학 소설이었는데,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 책에 소개된 모든 책을 다 찾아 읽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점점 게임과 넷플릭스, 유튜브처럼 바로바로 자극을 얻을 수 있는 도파민에 중독이 되어 책을 읽는 날을 손에 꼽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책을 읽으려고 다짐해도 몇 글자 읽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기 쉽상이었는데, 그때 읽으려고 다짐했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조지 오웰의 '1984'였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했고, 디스토피아라는 소재를 좋아했기 때문에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때마침 '1984'야 말로 위 2가지 기준에 적합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1984'를 다 읽자마자 바로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소설의 줄거리 자체가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 영상으로 옮겼을 때도 좋은 콘텐츠가 될거란 확신이 들었다. 소설의 구성처럼 3부로 제작된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계획했고 그렇게 1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달 간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다음 화에는 소설 1984를 영상으로 만들면서 어떤 워크플로우로 진행했으며, 제작비와 제작 소요 시간, AI 제작의 한계점 등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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