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들아 부탁해

종이의 기억으로 세상과 만나는 일

by 이다솜X김세계

뭐 하러 나까지 쓰고 싶어 할까? 이 의문이 브런치를 여태 미룬 이유였다. 쉴 새 없이 신간이 쏟아지고 글쓰기 플랫폼이 미어터지는 시대, 글의 범람에 동참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학부 시절 기사며 레포트는 지겨워했으면서 이제 와서 글을 쓰겠다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쓰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느 모임에서든 당연하다는 듯 글쓰기를 권했다. 독서모임에서도, 영화모임에서도, 어느 모임에서도 이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쓰고 읽고 평하다가 한 가지 불만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글이 많은데 내가 찾으려는 글이 없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환호가 열렬한 와중, 언어의 소멸이나 자동번역이 소실시키는 문화를 논하는 한국어 자료가 드물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한 워크숍에 갔다. 당장 영어의 침범을 다루는 글조차 영어 문헌이 전부라고 한탄하자 듣던 분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럼 선생님이 쓰셔야죠.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옳았다.


그래서 여름부터 인공지능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런데 자판에 손을 얹자 자꾸 다른 마음이 툭툭 튀어나왔다. 불현듯 언어를 즐겁게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사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마음가짐, 시간 관리 팁, 자신의 데이터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법, 솔직한 삶의 즐거움에 대해 쓰고 싶었다.


글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사랑해 온 기록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었다. 에밀리 디킨슨의 낙서,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레이첼 카슨의 스케치북, 마리아 포포바의 뉴스레터를 소개하고 싶었다. 치밀하게 연표와 지도를 만들어 열정적으로 나누고 싶었다.


얼마 전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 수업에서 마지막 과제를 작성하던 도중 이런 문장을 적었다. "글쓰기가 시간에 녹아버리는 삶을 종이의 기억으로 담아두는 일이라면, 일기나 에세이는 삶을 더 꼼꼼하게 사랑하기로 다짐한 흔적 같다."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랑은 글로 새어 나온다.


아마 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 가운데 글쓰기가 있기도 한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모든 글은 예외 없이 누군가와 만나는 법이었다. 먼저 탄생과 동시에 글쓴이에게 닿아 그를 자신의 첫 독자로 만들고, 오묘한 행운이 따른다면 기꺼이 작가를 떠나 작품이 된다. 이내는 글쓴이를 떠나 새로운 모험을 한다.


기꺼이 그 메아리를 기대하고 출발하는 설렘,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이런 마음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