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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Oct 31. 2024

정장 입고 야외로 나간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석기자미술관(111) <호아킨 소로야 인생의 그림>(HB PRESS)


2022년 <파리는 그림>이라는 꽤 훌륭한 화집을 읽었다. 서울을 주제로 한 화집을 구상하던 내게 상당한 영감을 준 책이다. 자연스럽게 에이치비 프레스(HB PRESS)라는 출판사를 주목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 바로 그 출판사에서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대형 화집을 냈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화집을, 그것도 국내에선 인지도가 없는 스페인 근대 화가의 화집을 내는 출판사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자화상 Autorretrato, 1904년, 캔버스에 유채, 66×100.5cm,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는 스페인의 항구 도시 발렌시아 출신의 화가다. 두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아이가 없던 이모 부부에게 입양돼 자랐다. 유명 화가들이 그렇듯 일찌감치 미술에 재능을 보여 공예학교에서 야간 그림 수업을 받았다. 열다섯에 발렌시아의 산카를로스 미술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감복해 그를 스승으로 삼고 꾸준히 벨라스케스의 예술을 탐구했다.     


해변을 따라 달리기,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0×166.5cm, 오비에도, 아스투리아스 미술관

     


소로야 역시 당시 세계 미술을 휩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회화 세계를 개척했다. 소로야는 천생 화가였다. 갓난아기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걸 빼면 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커다란 시련 없이 화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뇌출혈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 때까지 40년 동안 4천 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렸다. 고국 스페인은 물론 세계 미술의 중심 파리, 그리고 지중해 건너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살아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행복한 화가였다.    

 

소파에 앉은 클로틸데(부분),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80×110cm,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소로야의 그림을 보면 잘 그리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잘 보는 것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과학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개성 있는 표현을 이뤘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초상화 속 인물들의 표정을 보면 자연스러움을 넘어 아무 관계도 없는 관람객에게조차 친밀감을 준다. 특히 소로야는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데 능수능란한 기량을 뽐냈다.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을 넘어 대상을 향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아야몬테, 참치잡이, 1919년, 캔버스에 유채, 349×485cm, 뉴욕, 미국 히스패닉협회

    


화가의 본향은 발렌시아. 어릴 적부터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 저도 모르게 각인된 특유의 정서와 기질이 있기 마련이다. 소로야가 지중해의 빛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화폭에 담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해답이 자연에 있다고 믿은 소로야는 늘 야외로 나갔다. 정해진 시간에 정장 입고 출근했다가 칼같이 퇴근하는 규칙적이고 엄격한 삶을 평생토록 견지해서 스스로 군인보다 규칙을 더 잘 지킨다고 말할 정도였다. 화집에 실린 사진을 보면 심지어 자기 집 앞 정원에서 그릴 때도 소로야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다. 소로야는 발렌시아가 낳은 뛰어난 풍속화가이자 풍경화가, 인물화가였다.      


과거에도현재에도미래에도 나는 화가이고 싶을 뿐이다.”     


소로야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 집과 작품을 모두 정부에 기증했고, 소로야와 가족이 살던 집은 소로야 미술관이 됐다. 마드리드에 가면 프라도 미술관과 더불어 소로야 미술관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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