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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부터 제이알까지…미술관에 들어온 거리예술

석기자미술관(144) <어반아트: 거리에서 미술관으로>

by 김석

서울시 중구 흥인동 131번지. 이곳에 가면 충무아트센터가 있다. 주변에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는 까닭에 충무아트센터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사람들은 주로 이곳에서 뮤지컬과 연극 공연을 본다. 건물 1층 한쪽에 전시 공간이 있어서 그동안 꽤 좋은 전시회를 여럿 선보였다. 이제 갓 문화부에 첫발을 디딘 2010년 5월, 유명 만화가에서 조형 작가로 변신한 최정현의 개인전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박물관>을 취재해 KBS 9시 뉴스에 소개했다. 충무아트센터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발한 예술로 다시 태어난 고물들 (KBS 뉴스9 2010.5.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096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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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입처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바람에 공연 취재하러 몇 번 다닌 적이 있다. 더러 전시회도 보러 가곤 했는데 정확히 뭘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화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뒤로 2023년 5월,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작가 앤드루 조지의 사진전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취재해 9시 뉴스에 선보였다. 첫 취재 후 13년 만이었다. 사진작가 조세현이 새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전시 공간을 확장해 새로 꾸미고 갤러리 신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충무아트센터 길 건너가 바로 신당동이다.


■[주말&문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삶의 마지막에 선 이들의 편지 (KBS 뉴스9 2023.5.13.)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74783


20250119_145206.jpg 카우스, 4피트 컴패니언(해부, 갈색), 2009, 비닐, 페인트



다시 문화부를 나온 지 어느덧 일 년하고도 두 달. 바뀐 이후로 처음 찾아간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신당은 확실히 넓어졌다. 천장 높이도 넉넉해서 좋다. 지난해 10월 2일에 개막한 전시 <어반아트: 거리에서 미술관으로>가 곧 끝난다. 진즉에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전시는 유럽 최대 규모의 어반아트(Urban Art) 컬렉션을 자랑하는 독일의 미술관 MUCA(Museum of Urban and Contemporary Art)의 소장품 가운데 어반아트 대표 작가 10명의 작품 72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20250119_154805.jpg 뱅크시, 훼손된 전화 박스, 2005, 혼합 매체
20250119_155235.jpg 뱅크시, 그 의자 쓰는 거예요?, 2005, 캔버스에 유채
20250119_155343.jpg 뱅크시, 에리얼, 2017


전시장을 돌면서 놀란 것은 내가 그동안 어반아트를 제법 많이 취재하고 뉴스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이 전시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볼만하다 할 수 있는 뱅크시(Banksy)는 전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파쇄되며 엄청난 화제를 부른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2006)를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한 전시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을 빼놓을 수 없다. 꼭 1년 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뒤라 전시 취재가 더없이 즐겁고 유익했다.


■‘낙찰되자 절반 파쇄’ 뱅크시 화제작 한국에 왔다 (KBS 뉴스9 2023.10.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89808


■낙찰되자마자 그림 파쇄…‘수수께끼의 화가’ 뱅크시 정체는? (KBS 뉴스9 2022.8.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526726


20250119_152647.jpg 제이알, 세대의 초상, 2011, 석판 인쇄


20250119_150140.jpg 셰퍼리 페어리, 유의하여 복종하라, 2006, 나무에 실크스크린, 아크릴릭



뱅크시뿐만이 아니었다.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 10명 가운데 낯익은 이름이 둘 더 있다. 셰퍼리 페어리(Shepard Fairey)와 제이알(JR)이다. 두 작가의 존재를 아는 것은 어반아트에 진심인 롯데뮤지엄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작품 세계를 상세하게 소개했기 때문. 유사한 거리예술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마냥 생소할 수 있는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이상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아쉽기만 하다. 어쩌면 어반아트 자체가 화이트큐브와는 애초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이름난 작가의 작품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전 세계가 나의 캔버스”…세상을 바꾸는 거리예술가 (KBS 뉴스7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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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예술…‘오바마 포스터’ 그린 셰퍼드 페어리 (KBS 뉴스9 2022.8.1.)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522866


20250119_145717.jpg 리처드 햄블턴, 다섯 개의 그림자, 2005, 캔버스에 라텍스 아크릴릭


20250119_151932.jpg 인베이더, 루빅에게 체포된 시드 비셔스, 2007, 두 플렉시 패널에 루빅의 큐브


20250119_153104.jpg 빌스, 분산 시리즈 #14, 2019, 손으로 깎은 오래된 나무 문
20250119_153336.jpg 스운, 얼음 여왕, 2011, 마일라와 종이에 커피 가루 등등



참 부지런히 많이도 취재하고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리해놓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번 전시는 카메라 표시가 있는 작품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한다. 미술기자가 아닌 야인의 처지이니 어쩔 수 없다. 사진 촬영이 허락된 작품은 사진에 담고, 허락되지 않은 작품은 눈에 담고,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은 하나도 안 빼놓고 끝까지 다 봤다. 즐기면서 공부한다. 감사한 일이다.


■전시 정보

제목: <어반아트: 거리에서 미술관으로>

기간: 2025년 2월 2일(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신당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87)

문의: 02-2230-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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