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62) 게릴라展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계유년) 10월 10일,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자 세종과 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의 권력욕과 왕위 찬탈에 대한 야심이 빚은 정치적 쿠데타였다. 역사에 반정(反正)으로 기록될 수 없었던 명명백백한 반란이자 내란(內亂)이었다.
수양대군(首陽大君)
“지금 내 한 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였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나는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만일 고집하여 사기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먼저 베고 나가겠다. 빠른 우레에는 미처 귀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는 신속한 것이 귀하다. 내가 곧 좌의정 간 영의정 흉을 베어 없앨 것이니,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 단종 실록 8권, 단종 1년 (1453년) 10월 10일 계사 첫 번째 기사
살생부(殺生簿)
수양대군은 내란의 성공을 위해 반대파를 처단할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그 유명한 한명회의 살생부. 그 첫머리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반대파의 거두였던 좌의정 김종서였다. 수양대군 일행이 김종서와 그 일가를 도륙하면서 정변의 막이 올랐다. 수양대군은 최항에게 조정 신료들의 명단을 빼앗았다. 그것이 곧 살생부였다.
입궐(入闕)
김종서 일가를 처단한 수양대군은 단종이 머물던 경혜공주 저택을 비롯해 도성 4대문과 주요 군사시설, 요충지를 확보한 뒤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국왕 단종을 만나 김종서가 안평대군과 짜고 역모를 꾸몄다고 보고했다. 이어 수하들을 시켜 광화문을 비롯한 대궐 문을 장악하도록 했다. 그리곤 단종의 명을 빙자해 조정 대신들을 모두 입궐하게 했다. 수양대군에게 협조적이었던 공조 판서 정인지 등은 그날 목숨을 건졌다.
주살(誅殺)
반대파로 분류된 영의정 황보인, 좌찬성 이양, 병조 판서 조극관 등은 철퇴에 맞아 몸이 으스러져 죽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며느리의 친정으로 피신했다가 궁으로 들어가려 했던 김종서는 도중에 발각돼 목이 잘렸다. 수양대군 일당은 문종의 능인 현릉에서 비석 제작을 감독하던 민신과 다섯 아들을 현릉에서 참살하고, 우의정 정분은 유배했다가 회유가 먹히지 않자 목매달아 죽였다. 이로써 세종과 문종의 유지를 이어받아 정사를 주도하던 세력이 모조리 주살됐다.
세조와 단종
수양대군은 정난 공신 1등 자리에 자기 이름을 올리고 스스로 영의정부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내외 병마 도통사 등을 겸직해 권력을 틀어쥐었다. 자기 일파를 정난 공신 2등, 3등으로 올려 조정의 주요 관직들을 독점하고, 집현전에 자신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게 하는 등 스스로 절대 권력자가 됐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어린 조카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밀려난 뒤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가 끝내 주살됐다.
서용선의 단종 연작
서용선 작가는 1986년 우울한 감정을 안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친구로부터 장소의 연원에 관해 듣고는 “그 강물에서 ‘노산군 일지’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렇게 단종 연작을 시작했다. 비극의 뿌리. 도저한 비애. 단종의 비극은 서용선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역사 그리기의 출발점이자 뿌리가 됐다. 2017년 임종업의 책 『작품의 고향』(소동, 2016)을 통해 2014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 《역사적 상상 서용선의 단종실록》의 도록을 손에 넣었고, 이 도록에서 가지를 쳐 김별아의 소설 《영영이별 영이별》(해냄, 2014)을 읽었다.
무명의 전시장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서울 성수동의 한 전시장에 서용선 작가의 그림 10점이 걸렸다. 전시 제목은 <서용선 역사화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癸酉靖難) 게릴라展>. 4월 정식 개관을 앞둔 갤러리는 아직 그림을 걸 준비가 안 된 날것의 상태다. 틀이 잡히지 않은 까닭에 뜻있는 이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전시를 만들었다. 왜?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에 답이 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계유정난 이후 570년이 지난 이 땅에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정치 상황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시대와 상황이 달라져도 인간과 함께한 역사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영원하다. 그동안 우리가 일궈온 민주주의가 얼마나 나약했는지, 서로의 다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그 잘난 민주주의도 의심하고 질문하여 갈고 닦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서용선의 역사화(history painting)는 현 정치, 사회에 대한 우리의 실존의식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질문이다.” -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
그림을 거는 행위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 전시회가 있다.
이 전시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