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64) 김남표 김세중 2인전 <Être>
빈틈이 있다. 구멍이라 불러도 좋다. 빈틈으로, 구멍으로 그림이 비어져 나온다. 자연스럽게. 욕망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본성에 가까운 그림. 드로잉이다. 그려야 한다는 마음의 족쇄를 풀면 비로소 물 흐르듯, 실타래가 풀리듯 흘러나오는 그림. 각 잡고 그린 유화와는 비할 수 없이 화가와 감상자의 거리를 바짝 좁혀주는 그림. 김남표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 내가 김남표라는 화가를 신뢰하는 이유다.
수채물감을 이토록 능란하게 구사하다니.
게다가 저 투명한 색감은 대체.
느낌 있는 공간 ‘창성동 실험실’에 김남표의 그림이 걸렸다. 관람료는 없다.
전시 리플릿에 화가가 쓴 글을 여기에 옮긴다.
수채화 드로잉
기나긴 작업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그동안의 나의 작업이 얼마나 미술적이었는가를 질문한다. 나의 작업이 미술적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드로잉은 이러한 고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드로잉은 매우 어렵다. 결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드로잉은 미술적인 일상과 삶의 시작이다. 드로잉 재료 가운데 수채화는 더더욱 어렵다. 수채화는 찰나적이고 즉흥적이며 물성의 수용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수채화는 물의 번짐으로 인한 구상적 형태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미술은 ‘받아들이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수채화가 적절한 재료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5pm
오후 5시가 되면 모든 세상의 빛은 바뀐다. 이성적으로 살던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도시의 감정도 바뀐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흐트러지는 인간이 되고 나의 작업도 잠시 기존의 작업서 이탈하는 반항적인 붓놀림을 한다. 색은 야해지고 나의 생각은 응큼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업보다 더 미술적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나의 나이는 오후 5시이다. 50대 중반을 넘기며 세상의 빛이 바뀌듯이 나의 모든 것이 바뀌어 간다. 남성적인 호르몬이 줄어들고 그토록 기다리던 중성적인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이제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힘이 넘치던 붓놀림을 사라지고 흐트러지는 붓의 움직임 덕분이다. 꽃이 눈에 들어오고 취하려고만 했던 술잔이 한잔한잔 아름답다.
내 앞에 놓은 드로잉 종이는 오후 5시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