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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08. 2019

‘불멸의 화가’ 김홍도가 아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

이충렬 <천년의 화가 김홍도>(메디치, 2019)

마흔여덟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그 시절이었으니 늦둥이를 얻은 그 기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요. 첫 아내는 딸 하나를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등졌습니다. 족보에도 이름이 안 남았죠. 딸은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김홍도는 그 뒤로 오랜 세월을 홀아비로 지냅니다. 그러다 마흔 넘어 새 아내를 들여 늘그막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봅니다. 아이의 이름은 김양기(金良驥, 1792~1844 이전). 자라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화서 화원이 되죠.


천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김홍도는 아끼는 제자였던 박유성의 초대를 받아 1805년(순조 5년) 10월 초에 전주로 내려갑니다. 나이 예순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죠. 고작 12살밖에 안 된 아들과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을까. 김홍도는 그해 12월 19일에 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냅니다.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죠.


사진: 편지

김홍도가 아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 국립중앙박물관


날씨가 차가운데 집안 모두 편안하고 너의 공부는 한결같으냐나의 병세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에 이미 다 말하였으므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김동지도 찾아가서 이야기했으리라 생각한다너의 선생님께 보내는 월사금(삭전朔錢)을 보낼 수 없어 탄식한다정신이 어지러워 더 쓰지 않는다. 12월 19일에 아버지가 쓴다.”


건강이 안 좋았던 데다 형편도 무척 어려웠던 당시 김홍도의 처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편지는 김홍도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양기가 아버지의 글씨를 모아 엮은 《단원유묵첩》에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최순우 선생이 국립박물관 미술과장 시절에 발견해 《미술자료》 1966년 12월 호에 실은 논문에서 그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미술자료》 1966년 12월 호에 실은 논문에 최순우가 수록한 편지


보시는 것처럼 흐릿한 흑백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그 뒤로 이 편지는 단 한 차례도 공개된 적이 없다가, 최근 전기 작가 이충렬이 김홍도의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에서 원본을 번역문과 함께 소개했습니다. 김홍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대중에게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인 겁니다.


이 책에서 이충렬 작가는 김홍도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전주에서 보냈다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새롭게 밝혔습니다. 그 결정적 근거가 되는 문헌 기록을 찾아냈기 때문이죠. 김홍도가 전주로 갔을 당시 전라 관찰사(감사)는 심상규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17년 전에 한양의 백악산 아래에서 시 모임을 열었을 때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심상규의 《두실존고 斗室存稿》 ‘척독(尺牘) 편’


당시 심상규가 한양에 있는 자신의 벗인 예조판서 서용보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기에 김홍도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 내용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이충렬 작가가 처음으로 밝혀내 책에 이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화사 김홍도가 굶주리고 병들어 먹을 것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이 사람은 이 시대에 재주가 훌륭한 사람인데 그 곤궁함이 이와 같습니다우리나라는 인재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작은 부채에 매화 한 가지를 그리게 하고 스무 자 절구를 써서 보냅니다.”


병들고 곤궁한 대화가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마음이 오죽이나 깊었으면 우리나라는 인재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썼을까요. 김홍도의 불우했던 말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결정적 사료입니다. 심상규가 이 편지를 쓴 날짜는 1805년 12월 30일입니다. 적어도 김홍도가 1805년까지는 아직 살아 있었다는 뜻이죠. 그 뒤로 김홍도에 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김홍도가 사망한 해를 이듬해인 1806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이충렬 작가는 김홍도의 일대기를 최대한 사실에 맞게 복원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자료를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무슨 비결이 있는지 물었더니 예상 밖에 뻔한(?) 대답을 하더군요. 자료가 없는 게 아니라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요즘은 수많은 고문헌 자료가 전산화되어 있어서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말이죠.



미술사학자도 아닌 작가가 김홍도의 일대기에서 새롭게 밝혀낸 사실들이 그렇게나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놀라움을 줍니다. 김홍도의 정확한 출생지역, 한양에서 머물던 집의 위치를 문헌적 근거에다 합리적 추론을 더해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죠. 이충렬 작가는 무엇보다 김홍도에게 드리워진 ‘정조의 총애’라는 신화를 냉정하게 걷어냅니다.


작가는 더불어 인접 학문과 협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모든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의견을 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보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전문 연구자가 아닌 작가가 김홍도의 전기를 쓴 게 참 다행인 것도 같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을 볼수록 그는 어떤 화가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그동안 나온 책과 자료를 찾아봤지만 그의 삶에는 알려진 부분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어쩌면 김홍도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알려지지 않은 삶 속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김홍도의 전기를 쓰게 된 동기다화가의 삶을 정확히 알면 그림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믿음도 그의 삶을 추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부추겼다.”


책을 읽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건 왜 김홍도의 전기를 썼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궁금증의 해답은 친절하게도 작가가 서문에 자세하게 써놓았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인물이 남긴 삶의 자취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저 과거의 인물로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김홍도 전기인 이 책을 통해 화가 김홍도, 인간 김홍도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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