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 에세이를 왜 읽으세요?

제목 어그로에 속지 마세요. 단지 한 여자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by 김선혜

사람들은 에세이를 왜 읽을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오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은 겪지 못한 삶을 겪어본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서’라고 요약되곤 한다.


문제는,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내게는 ‘겪어본 사람의 마음’은 있으되 ‘본인은 겪지 못한 삶’이 없다는 것이다.


이 에세이가 과연 읽힐까? 우연의 인도로 이 페이지까지 들어온 사람이 과연 스크롤을 끝까지 내릴까? 내게는 에세이를 쓸 만한 삶이 없지만 에세이를 쓰고 싶어서, 언어학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건데.



나는 90년대 후반 태생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다. 내신 성적 외에 내세울 스펙이 영 없어서 고3 담임이 진학지도에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대학교는 좋은 곳으로 갔다.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계열로 입학해 국어국문학과로 전공진입했다. 하지만 성균관대 한 곳에서만 1년에 신입생 3천 명을 뽑는다. 소위 서연고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1년에 15,000~20,000명씩 쏟아져 나오는 ‘꽤 명문대’ 학생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혹시 ‘오락문화의 선구자’라고 아시는지?


그나마도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특별한 계기나 사명을 갖고 자퇴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오락문화를 선도하다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학 2년 만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고, 정신과 처방 약을 빼먹지 않고 먹었지만 증상은 악화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휴학과 복학을 몇 번 반복하다 어느 시점에 끝내 복학하지 못했다. 쓰레기통 수준의 고시원에서 친한 언니와 남자친구의 강권으로 겨우 빠져나와 본가로 내려왔고, 다음 해에 정식으로 미복학 제적 처리가 되었다.


본가로 내려온 후 나는 몇 년을 폐인으로 살았다. 이 시기에 대해서도 쓸 말은 없다. 취직하기까지 약 2년 반 정도를 보냈는데 한 일은 딱 두 가지, 모바일 게임과 술이었다.


어찌어찌 취직을 했다. 지방공기업의 이동지원처(장애인 콜택시) 고객상담팀 상담원이었는데, 이 시기에 대해서 쓸 수 있는 말이 없지는 않지만 쓰고 싶은 말은 없다. 콜센터 상담원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그만둔 건 후회한다. 참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공기업은 온실이다. 경제 한파를 체험할 일이 없었던 나는 그 온실에서 나온 뒤로 재취업이 되지 않아 내 인생이 아주 시려질 걸 예상하지 못했다.


과거의 선택은 미래의 결과에 따라 평가가 늘 바뀌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공단을 그만둔 것’은 내 인생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어리석은 선택임을 여기서 뼈저리게 고백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으로 만 2년 가까이 놀고 있는 것만 소재로 해선 책을 쓸 수 없다. 그리고 공무원을 그만둔 이야기로 책을 쓴 사람이 이미 너무 많다.


우울증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약물뿐만 아니라 심리상담도 필요함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형편 탓에 대학도 사회적 배려자 전형으로 진학한 내게는 상담비를 내는 게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술은 항상 사 마셨으니, 이것도 내 인생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아무튼 돈이 없었기에 나는 공단 취직 반년이 지나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무려 5년 후에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비용이 저렴한 전화 상담으로 시작해서, 첫 상담 선생님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심리상담은 내게 정말로 필요했고 그만큼 유익했다. 하지만 나는 상담을 자주 빼먹곤 했고, 타의로 상담 선생님이 바뀌기도 했다. 우울증이 많이 호전되지 못하기도 했다(아직까지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회복되는 과정을 책으로 낸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게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내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 원래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십여 년간 단편소설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다. 책장의 작법서는 계속 늘어나는데 완결작은 0편에서 전혀 늘지 않았다. 내 글을 읽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글을 잘 쓴다는데, 나도 글을 쓰는 일이 자신 있고 즐거운데, 글 쓸 때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는데, 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완결은커녕 첫 문단을 벗어나지 못할까. 이유를 끝내 찾지 못한 채로 십여 년간의 꿈을 억지로 떼어냈다.

공단에 다닐 무렵부터 나는 블로그에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계기는 평범했다. 내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확실히 에세이가 더 잘 써졌다. 새벽 4시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 그 결과 10년간 소설 완결작이 없던 나는 1년 안에 몇 편의 긴 에세이를 완성해 냈다. 하지만 그걸로 작가가 되진 못했다. 내가 작가가 될 생각으로 글을 쓴 게 아니라 그저 감정을 쏟아내는 통로로서 썼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소설을 써서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에세이를 써서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이 바닥에 도착한 이후 에세이를 써서 작가가 되는 일도 소설을 써서 작가가 되는 일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 또한 깨달았지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 그리고 이 글의 부제에 대한 복선 회수가 드디어 이루어진다. 나는 소위 ‘문학파보다 어학파’였다는 것이다.




나는 계열제로 입학했기에 대학교 1학년 때는 교양 과목만 듣고 1학년이 끝나고 나서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철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막연한 이유로 가기 싫어졌다. 사학과에 갈까 했는데 친한 언니(위에 쓴 ‘쓰레기통 고시텔에서 나를 구조해 준’ 그 언니다)가 사학과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문득 내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 있었다.


역사학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학문이다.

문학은 과거의 사건을 이미 당시의 시각으로 해석한 걸 재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니 문학이 더 깊지 않을까?

역사학 전공자가 들으면 개소리라고 펄펄 날뛸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국어국문학과 전공을 택했다. 분노의 댓글은 부디 미뤄두시라. 그 생각을 한 나도 과거의 나 자신에게 펄펄 날뛰고 싶었으니까.


국문학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슬프게도 나는 문학의 깊이를 찾기는커녕 문학에 실망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내셔널리즘, 포스트리얼리즘 등 온갖 사조를 끌어와 작품을 해석하지만 내게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만 느껴졌다. 교수님들이 실력이 없는 것도, 토론을 하는 학우들이 불성실한 것도 전혀 아닌데, 심지어 조별과제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나는 왜 수업 듣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까. 전공이라는 게 다 이런 걸까, 이미 취업의 전당이 된 대학교를 아직도 학문의 전당으로 생각한 게 잘못일까.


황당하게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강한 국어학 과목이 과거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줬다. 수업을 듣고 보고서를 쓰며 언어학에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보고서 최종본에 저 연구 동기를 수정하지 않고 냈다. 교수님은 읽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수업명은 ‘국어의미론’이었다. ‘한국어 의미에 관한 자유 주제’로 중간고사 대체 보고서를 쓰는 수업이었는데, 나는 ‘형용사 ‘귀엽다’의 의미 확장’에 대해 썼다. 하필 그 주제였던 이유는…… 내가 “국어의미론 수업 담당 교수님 귀여워”를 연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엽다’는 원래 연장자에게 쓰는 말이 아님에도. 그것이 잘못된 언어 사용이 아니라 변화된 언어 사용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언어학에 대한 열정과는 거리가 있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잘 쓰고 싶은 열정은 있었다. RISS에서 학부생이 접근할 수 있는 한국어 형용사 관련 논문은 거의 다 읽었다. 코퍼스(corpus; 말뭉치, 평소 우리가 쓰는 말이나 글을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ChatGPT도 없던 2017년에 대중에게 공개된 KAIST 코퍼스에서 ‘귀엽다’가 들어간 문장은 300여 개였다. 그리고 비교를 위해 대학생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서 ‘귀엽다’를 검색해 표본을 동일한 300개로 맞췄다. 총 600여 개의 문장마다 하나하나 의미 성분 분석을 하고 결괏값을 엑셀에 기입했다. 점점 학부 2학년생이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보고서 하나에 들이고 있는 노력치곤 과도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 보고서는 이제 마무리 짓고 제출해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쓸 수 없나? 하는 생각마저 했다. 어느덧 나는 언어학에 대한 열정에 성큼 가까워져 있었다.


이 공부만 한다면 졸업할 때까지 21학점씩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하게 교수님께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 휴학하고 정신과 진단을 받은 게 직전 학기였다. 돈이 없어 심리상담도 받지 못하고, 창문도 없는 고시텔에서 이사가지도 못했다. 21학점은커녕 다음 학기 다시 휴학을 했고, 그다음 학기에는 복학을 했지만 결국 중도 휴학을 했다. 더 이상 복학하지 못했고 본가로 내려갔다.


2년 반 가까이 술과 게임으로만 시간을 보낸 것은 원래 가진 병도 있었지만 공부를 싫어해서 그만하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 공부를 그만해야 했던 것에 대한 큰 상심도 이유였다. 그때는 경로 이탈 자체가 되돌릴 수 없는 실패로 느껴졌기에, 늦게라도 대학교에 재입학해서 학업을 마저 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없었고, 학업을 마저 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가정형편은 여전히 어려웠고, 어머니는 나를 경북대가 아닌 인서울 대학교에 보내서 홀로 상경시킨 것을 후회하는 판이었다.




나는 언어학을 사랑했지만 짝사랑은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차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즉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언어학에 대한 사랑이 식을 기회 또한 없었다. 언제부턴가(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언어학 전공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생도, 대학생조차도 아닌데, 그걸 한다고 대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우울증은 끈질기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진단을 받은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놓여나지 못했다. 공부는커녕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유지하기도 벅찼고,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는 것, 씻고 밥을 챙겨 먹는 것,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내게는 다 문제였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면 언어학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살 것 같으면 술을 안 마시는 것, 씻고 밥을 챙겨 먹는 것,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본가행 KTX 표를 내게 억지로 쥐여 줬던 게 벌써 6년 전, 가족과 남자친구는 있지만 공부를 함께할 학우는 없이 혼자만의 꿈을 간직하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니 당연히 제대로 된 진척이 없었다. 심지어 일도, 공부도 지난 6년간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으니, ‘대학교로 돌아간다’는 가장 기반이 되는 목표도 아직 너무 멀기만 한 상황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에는 내가 내년에는 만으로도 30살이라서, ‘이제는 정말 혼자 공부해서는 취미만 되겠다’는 위기감도 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쓰기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속도를 올리겠지.




사람들은 에세이를 왜 쓸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오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타인에게든 내게든, “저는 언어학을 좋아해요. 평범 이하의 사람이고 여건이 안 되지만 공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로 수렴했고, 결국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단지 공부하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평범한 직장인이 취미 삼아 공부를 한다는 소재의 글은 꽤나 흔하다. 그러면서 그 공부의 주제는 언어학이라는, 대중에게는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학문이다. 많은 사람이 읽어 줄 만한 글은 아니라고 느낀다.


SNS 글쓰기의 핵심 조언은 ‘일기를 쓰지 말라’는 것인데, 나는 어쩌다 한두 사람이 읽어볼 수도 있는 일기를 쓰려고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언어학 공부 일기 쓰기를 계속해 나가려고 한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