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린 삶이라 해도
토요일, 출근길 버스에 휴대폰을 놓고 내렸다. <그릿>이라는 책에 푹 빠져 읽다가 급하게 내리느라 자리에 휴대폰을 놔둔 걸 챙기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했을 때 이미 나를 내려준 버스는 저만치 지나간 후였다. 버스 번호판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버스를 타고 내린 시각을 정확히 알고 있으므로 버스 회사에 전화하면 금방 찾으러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일단 그대로 일을 하러 갔다. 그러잖아도 요즘 쿠팡 물량이 줄어서, 근무자 단톡방에 있는 사람도 전부 채용 확정을 시켜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번의 지각, 결근 때문에 이후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었다. ‘버스에 휴대폰을 놓고 내려서 찾으러 가야 한다’는 이유는 사실이지만, 온갖 기상천외한 당일 근무 취소 사유를 들어왔을 관리자가 내 사정을 봐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출근했고, 휴게시간에 인사팀 사무실에서 잔소리를 들으며 근로계약서에 수기 사인을 했다(쿠팡 물류센터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원래 전용 앱에 로그인해 출근/퇴근 체크를 해야 한다). 직원분이 빌려준 휴대폰으로 버스 회사 전화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내가 탄 버스와 내린 정류장, 시각을 말하니 여기 말고 다른 버스 회사에 전화해야 한단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신호가 가는 동안 “저희 OO버스에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 음성이 나오는 걸 보니 전화번호가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 안내 음성이 몇 번 나오다가 같은 여자가 “죄송합니다. 지금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통화가 종료될 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급행 버스를 탔다. 종점이자 버스 차고지에 도착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내게 커다란 위기를 안겨준 책을 읽으면서. 차고지에 도착하자 OO버스 사무실을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시던 버스 기사님들 몇 분께서는 내 질문에 아주 친절하게 답해 주셨다. 주말이라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고, 버스 기사가 운행을 종료하고 차고지로 돌아올 때 휴대폰 주인에게 연락을 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외마디 목소리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휴대폰인데요……?”
차라리 지갑이라면 모를까, 휴대폰이 없는 상태로 어떻게 이틀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 당장 내일도 일하러 가야 하는데, 또 인사팀 사무실에 가서 수기 사인이라도 요청해야 하나.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노트북으로 검색해 보니 ‘Samsung Find’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다행히 휴대폰의 위치가 검색되었지만, 그 위치는 아까 들렀던 차고지 위치였다. 아마 버스 기사님은 차고지에 들렀을 때 휴대폰을 충전기조차 꽂지 않고 사무실에 놔두고 가신 게 틀림없었다. 소리 울리기도 해 보고 분실 모드도 켰지만 확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였다.
월요일까지 휴대폰을 찾을 방법이 없어졌다. 엄마가 “내일은 내가 깨워 줄게”라고 말씀하셨지만, 완전히 실의에 빠진 나는 쿠팡에 일요일, 월요일 근무 취소를 요청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그릿>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은 결과로 상당히 그릿(Grit; 사전적 의미는 투지, 기개이며, 저자 앤젤라 더크워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한 열정적이고 끈질긴 노력’으로 정의하는 개념)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였다.
하루치 불운에 대해 길게 쓰면서 이번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불운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지 못해서 이틀이나 일을 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불운이지만, 애초에 내릴 정류장이 뻔한데 책을 읽다가도 때맞춰 내릴 준비를 했더라면 휴대폰을 잃어버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래 가사에서 유래한 신조어인 ‘스불재’, 즉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이 일을 나 자신이 일으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데, 그 일이 재앙 규모가 되기를 바란 사람은 또 없을 테니.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들은 일탈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면 그 이후의 인생은 탄탄대로라고 그렇게나 말씀하셨는데, 왜 서른 살이 된 내 인생의 궤적은 이 모양으로 괴발개발 엉망진창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며 공부를 게을리해 지방 사립대에 입학한, 그나마도 1년 만에 자퇴한 남동생이 지금은 5년째 같은 직종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나보다 훨씬 건실하게 살고 있다. 김XX 선생님, 제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하실 거면서 그런 말씀은 왜 하신 건가요, 나는 선생님 말씀은 철석같이 믿었는데…….
지난 1화에서 대학교 시절 언어학을 재미있게 공부했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어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해서 혼자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 공부를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앞으로 뭐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쓰지 않은 이유는, 정말로 내가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목표는 ‘언어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기’이다. 내 전적대에는 언어학과가 없기 때문에, 수능을 다시 볼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수능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고,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도 충분히 좋은 곳이니만큼 재입학 신청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1차 목표를 이룬 후의 미래, 그다음 목표는 솔직히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년에 내 나이는 만으로도 서른이 되는데, 당장 재입학을 해도 가장 빠르게 졸업할 수 있는 나이는 만 32살이다. 만약 수능을 친다면 만 35살이 하한선이다. 지금 모아놓은 돈은커녕 빚이 있는 상황이라 저 하한선조차 비현실적이다. 그 나이에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다 한들 그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취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만 35살에 학부 졸업을 한 사람이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건 대기업 취업보다 더 불가능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 할 수 없는 건 키즈 모델뿐이라면서,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나는 정말 공부하고 읽고 쓰는 게 너무 좋다고, 내 재능과 하등 상관없는 물류센터에서 남은 삶을 다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30살이라 무스펙 30살인 게 아니라, 지난 30년을 차곡차곡 잘못 살아왔기에 무스펙 30살인 것이기에. 세상은 내게 ‘스불재’라 말하고, 나는 남을 탓해도 보상해 줄 수 있는 이가 없어 결국 나 자신을 탓한다.
지금도 버스에 칠칠맞게 휴대폰을 놓고 다녀서 이틀씩 일을 빠지는 사람이 앞으로 대학교는 무슨 수로 갈 것이고,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꾸려갈 건지 나도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스불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운이 좋았다면, 여유가 있었다면, 현명한 판단을 했었다면 피해 갔을 법한 일들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는 삶. 내 불행을 자랑할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닌지라 제일 크고 인상적인 사건 두 가지만 써 보려고 한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은따로 낙인찍힌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공용 빨래통에 그대로 넣어서 6인실 룸메이트들의 빨래가 전부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이자 멘토로 있는 2학년 언니가 동분서주하며 중재를 하는 동안 나는 그저 모든 게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마 다른 학생들은 김선혜가 자기 손으로 세탁기 한 번 돌려본 적 없을 만큼 곱게 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생리혈이 묻은 팬티는 다른 세탁물과 섞이지 않아야 한단다’라고 가르쳐 줄 만큼 내 성장환경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인데.
올해 초에는 일명 ‘팀미션 사기’ 또는 ‘온라인 부업 사기’라 불리는 사기를 당해 800만원이 넘는 돈을 잃었고, 그 대부분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제2금융권에서 급하게 빌렸던 600만원은 아직도 내게 매달 상환의 짐을 안겨주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나는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절망감에 가득한 상태였다. 그들이 링크로 보내 주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걸 인증하라고 해서, 그게 일거리인 줄 알았다. 실제로 그들은 내게 몇만 원씩을 입금해 줬고, 신뢰가 쌓일 때쯤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특정 계좌에 내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4인 1조의 팀이 짜였고, 누군가가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돈을 30분 안에 입금하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금한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했다. 관리자는 “방법을 찾아보세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서로에게 화내고 관리자에게 하소연하다가 신기할 정도로 어떻게든 입금 인증 사진을 보냈다. 촉박한 시간과 팀원들까지 돈을 잃게 만들 수는 없다는 도덕적 압박감 때문에 어떻게든 나도 돈을 빌려서 송금했다. 그들 모두가 사기꾼 한 놈의 여러 자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진정서를 쓰고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 경찰은 ‘도대체 왜 이런 것에 속냐’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도대체 왜 이런 것에 속았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절실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걸 뉴스라도 보면서 미리 알아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운도 없고, 여유도 없고, 현명한 판단력도 없었기 때문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30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떡하지? 이제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두 배는 더 많다.
20대 때 농담이든 진심이든 “나는 막 살다가 빨리 죽을 거야.”라고 한 번쯤 말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 지인 중에서는 30살이 되면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받을 거라는 계획을 진지하게 읊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과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라 그가 정말로 그 계획을 실행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내 다른 지인들과 나는 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잘 죽지 않는 생물이며, 의학자들이 눈치 없이 나날이 평균 수명을 늘려놓은 덕에 우리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살아가야 할 기간은 지랄맞게 길며, 지난 삶의 궤적이 얼마나 엉망이든 간에 신은 “종이를 바꿔주지 않을 테니 그 종이 그대로 남은 그림을 완성해서 70년 후에 오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잉크를 너무 많이 쏟고 밑그림도 잘못 그려서 지금 그림은 도저히 가망이 없어요. 다음 그림은 정말 밑그림부터 제대로 그릴 테니까, 이 종이는 찢으면 안 될까요?”
“종이를 찢는 건 네 마음이지만, 네가 윤회의 결과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지, 또는 사후세계가 있어 연옥이나 지옥에 가게 될지는 나도 모른단다. 참고로 종이를 찢는 방법 중에 고통스럽지 않은 건 하나도 없어. 스위스 안락사 기계를 쓰려면 몇 억은 들고 대기줄도 긴 건 알지?”
빌어 처먹을 무능한 신 같으니라고!
사실 내가 무능한 것이지 신이 무능한 건 아니다. 신은 내게 그다지 좋은 종이를 주지 않았으나 거기에 그림을 잘못 그린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만약 내가 열심히 돈을 모으고 수능을 잘 쳐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한다면 그간 잘못 그린 궤적을 만회할 수 있을까?
한때는 그런 달콤한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어학과 진학은 과거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철저한 청사진이 되어야만 했다. 현재 한국에서 순수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것이 중론인데, 학사 졸업할 때의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서른다섯 살이면 솔직히 기회비용이 아까운 수준이다. 과거의 실패를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위해 몇 년과 수천만 원을 쏟아부은 결과로, 10년 전에 받아야 했을 대학 졸업장 한 장을 받아 나오는 건 내 처지에는 새로운 ‘스불재’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냐고?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되고 싶은 것은 있다. 교수, 연구자, 저술가. 하지만 나이의 벽이 너무 커서인지, 그런 삶을 사는 나의 모습이 전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연예인이 된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하면 더 쉽게 상상이 될 정도로 나의 앞날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언어학과를 졸업해서 뭐가 되지? 정말 미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와 ‘언어학과 정말 꼭 가고 싶다!’라는 두 생각은 기묘할 정도로 공생하고 있다. 앞은 캄캄한데 열망은 진실하고, 열망은 진실한데 앞은 캄캄하다. 나는 일단은 이런 내 마음 상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졸업하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으면 뭐 어떤가. 물류센터에서는 항상 사람을 구하고 있을 텐데. 그때 되면, 시간과 돈을 들여 언어학과에 입학한 게 ‘스불재’였었노라고 픽 웃으며 물류센터로 향하자.
우리가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다면 물리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는가? 우사인 볼트가 될 수 없다면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가? 어제보다 조금 빨리, 조금 오래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가?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딸이 내게 “엄마, 나는 절대로 모차르트가 될 수 없으니까 오늘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너는 모차르트가 되려고 피아노를 연습하는 게 아니란다.”
우리 모두는 재능뿐 아니라 기회에 있어서도 한계에 직면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부여한 한계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시도했다 실패하면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는 겨우 몇 걸음 가보고는 방향을 바꾼다. 어느 경우든 우리가 가볼 수 있는 곳까지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릿>, 앤젤라 더크워스 저, 김미정 역, 358~359p 중
내 배가 표류하고 있을 때 항해를 이어가는 법은 무엇일까? 나는 딱 한 가지만 알고 있다. 어쨌든 노 젓는 건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릿>은 내게 간접적으로 고난을 안겨준 책이지만, 책을 마무리 짓는 구절에서 저자는 “부단히 노력할 마음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천재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나는 절대로 소쉬르나 촘스키가 될 수 없고, 언어학을 공부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불운 중 하나의 큰 행운이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확실히 안다. 그리고 언어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큰 행운에 글재주라는 작은 행운이 덧붙어 있다.
그리고 휴대폰을 잃어버린 일도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SNS와 게임의 방해에서 해방된 나는 드디어 한 달간 완성하지 못했던 2화 초고를 갈아엎고 하루 만에 5300자가량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