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에 대해서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다. (위키 낱말사전)
- 정성스럽고 참되다. (네이버 사전)
- 곡식 따위가 다 자라서 열매를 맺다. (네이버 사전)
한국어는 한자를 알아야 해서 좀 속상하지만, 한자로는 성실이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誠 정성 성 (성의를 다한다는 단어의 성도 이 성이다.)
實 열매 실
모든 직업에는 성실함이 중요하지만, 주부만큼 이 성실함이 중요한 직업은 세상에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주부의 일은 그 누구도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 프리랜서도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고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도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 휴가도 낼 수 있고, 그 사람이 없어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존재한다. 극단적인 경우에 그 사람이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직업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일시적인 성실함을 모든 직업은 요구하지만 오랜 시간의 성실함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부는 오랜 시간의 성실함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떠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나 이틀 휴가를 낼 수 있고 누군가가 그 일을 잠시 도와줄 순 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돈이 많아서 집안에 가정부를 둘 수도 있지만, 그 가정부를 관리하고 일을 맡기는 일은 그 집의 주부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위임은 했지만, 여전히 그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 집의 주부가 진다. 그리고 그 일은 가정이 존속하는 한 영구적이다.
그래서 주부에겐 이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 밥을 하기 싫을 때도 밥을 해야 하고, 일어나기 싫을 때도 일어나야 하고, 지저분한 집을 정말 치우기 싫을 때도 무릎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서 하나둘씩 치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 한 끼 만은 어떻게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올 때에도 꿋꿋하게 냉장고를 살펴서 뭐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면서도 지루해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는 놀라운 정신세계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최근 나를 괴롭게 한일이 주말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니 주말이 사라진 게 아니라 주말이 평일보다 더 힘겨워졌다는 사실이다. 결혼하기 전, 그리고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금요일 저녁이 가장 행복했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슬퍼지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금요일 저녁이 되면 긴장하게 된다. 이번 주말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매번 식사를 어떻게 준비하지?라는 겹겹이 쌓여가는 고민들이 나를 힘겹게 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어찌어찌 주말을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작은 기쁨이 내 마음속을 살짝 적시어 왔다.
그러면서 왜 주부는 주말이 없는가?라는 자연스러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주말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사회구조, 사회 시스템이 주부의 일상생활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현대사회는 주 5일을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이틀은 쉰다. 이렇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시스템 속에서 주말은 당연히 쉬는 날로 인식하고 그 인식에 맞게끔 주말을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과 가치관을 주부에게 적용하면 주부를 힘들게만 할 뿐이다.
주부는 주 5일 일하지 않는다. 주 7일을 일한다. 그리고 주부에게 휴가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 자체가 사실상 현대 시스템에서 놓치고 있는 한 영역이란 것이다. 주부는 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주부에게는 이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사회 시스템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 뭔가 맞지 않는 사상과 이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부가 이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순 없으니, 주부만의 새로운 사상과 이념으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살면서도 자신만의 생활패턴을 유지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관, 방법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기본적으로 주부는 주말에 가장 바쁘다. 모든 식구가 함께 모여있고, 그리고 이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 주부가 반드시 남자여야 하는 것도 여자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한 명이어야 하는 것도 두 명이 함께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건 주부의 역할을 하는 가족 구성원중 누군가에게는 주말이 가장 바쁜 날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쁜 주말을 보통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여유와 쉼이라는 가치관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가치관의 부딪힘은 주부로 하여금 낙담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며 괜히 자기만 불쌍한 처지에 있는 것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을 발산시킨다. 왜 그럴까? 주말에 단지 바쁘게 일하는 것 때문일까? 그건 분명 아니다. 그 근원은 역시나 사회가 알게 모르게 주입하고 있는 가치관과 현시에서의 괴리감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은 쉬는 걸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쉬지 못한다는 생각은 사회에서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스스로가 왠지 모르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즉 주말에 바쁘게 일하는 게 괴로운 게 아니고 사회가 알게 모르게 심어준 사회적 통념과 자신이 하고 있는 위치와 일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부딪힘의 근원에 들어가서 다시금 가치관을 바르게 정립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 일은 주부에게는 휴가와 주말의 개념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말(週末)은 한 주(週)의 끝 무렵을 말하며, 보통 대부분의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가리킨다.(위키백과)
주말은 그저 한주의 끝이다. 그게 사전적 정의이다. 그 이후의 정의는 시대가 변화면서 계속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하는 가치관에 나의 가치관을 고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주부에게도 주말은 존재한다. 그저 한주의 끝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그 끝이 주부에게는 조금 일이 더 많고 더 많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주말이 가지고 있는 현대적인 개념인 쉬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 주부는 언제 쉬어야 할까?
아니 꼭 쉬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쉬어서 뭘 하고 싶은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나의 최근 질문들이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 더욱 주부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느낀다. 꼭 쉬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리고 주말이라고 해서 일을 줄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삶이라는 것은 각 사람마다 해야 할 의무가 모두 다른데,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를 묵묵히 해내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삶을 더욱 지혜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