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뺏기지 않는 노동의 행복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잘생기고 멋지게 보일까를 쉼 없이 고민하고 실천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쉽게 발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외부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집안일도 비슷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쉼 없이 청소하고 정리, 정돈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돈된 집안을 보면서 뿌듯해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리 잘 정돈되어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잘 정리, 정돈되지 않으면 집안 식구들은 조금씩 병들어 간다.
그런데 주부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정리하고 청소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지금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꾸만 뒤로 미룬다. 그런데 이렇게 뒤로 미루다 보면 괜히 짜증이 나고 집안 청소를 다 했지만 뭔가 모를 찜찜함에 하루가 상쾌하지 않다.
여름이 오기 전에 했어야 할 일들을 미루다고, 드디어 칼을 칼집에서 뺐다. 막상 그 칼을 빼고 나니 의외로 일의 진척도가 빠르다. 먼저는 에어컨 필터를 뺐다. 우리 집에는 두 개의 에어컨이 있는데 안방에 있는 에어컨은 복을 받았는지 필터가 깨끗하다. 아마 잘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문제는 거실에 있는 에어컨 필터였는데 이 녀석은 정말 너무나 더러웠다. 괜히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이 필터에 찌들어 있는 먼지들이 우리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내 폐 속에 침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한 죄책감도 든다.
그리고 매번 청소하면서 고마워했지만 잘 건드리지 못했던 청소기의 청소 통도 한번 끄집어 봤다. 역시나 처음에 샀을 때 청소기와 상태가 많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매번 청소기 통을 비워내긴 했지만 이 녀석을 깨끗하게 청소하지는 않았다. 새로 산 청소기인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그 청소기 통은 왠지 몇 년은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모두 나의 불찰이다.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나의 외부지향적인 삶에 대한 습관이 집안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공원에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다가 아이들의 승리로 끝난 물놀이. 그 결과는 나의 몫이다. 그렇게 신발 신고 물놀이하면 안 된다고 일렀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냥 현대를 살아가지만 현대문명을 무시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그걸 억지로 이겨내는 부모들도 있지만, 나는 일찌감치 그걸 포기하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뭐 그래도 덕분에 땀 흘리면서 일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노동의 즐거움을 깨닫는 기회로 삼는다면 나쁘지 않다.
그렇게 집안 구석구석, 그리고 조금 귀찮은 빨래를 하고 나서 베란다에 올려놨다. 아이가 셋인 집의 필수품인 건조기라는 놀라운 구세주가 우리 집에 있기 때문에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일은 잘 없다. 일상 빨래가 아닌 특별한 경우에 우리 집의 작은 베란다를 빌려서 사용한다.
놀랍도록 햇살이 뜨겁다. 그리고 그 햇살에 내가 열심히 땀 흘려 노동한 결과물들이 놓여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속도 후련하고 흘린 땀들이 아직은 시원한 바람에 식고 있다. 이런 일을 한다고 누가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하지 않아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주부의 기쁨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 드러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얻게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노동에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행복한 건 아니고,
노동 자체에도 큰 기쁨과 행복이 숨겨져 있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노동의 기쁨은 타인이 뺏아갈 수도 없고 침범하지도 못하며 전혀 방해받지도 않는다.
노동 자체의 고귀함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노동의 기쁨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벅차오르게 기쁜 하루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주부를 더욱 주부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