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에서 자유로

막내가 드디어 유치원을 입학한다.

by 김씨네가족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아이들을 키운다고 하여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은 넘쳐난다. 모든 가정이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집의 사정과 우리 집의 사정이 같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정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건 우리의 시간이 자녀의 삶에 상당히 속박된다는 사실이다. 그 속박에 담긴 의미를 긍정적으로 풀어가느냐, 부정적으로 풀어가느냐는 부모의 역할이지만 분명히 속박되는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 속박에서 자유로 넘겨지는 시간들이 꽤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 짜릿하고 흥분되는 경험은 오직 부모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 어제가 나한테 있어서 그런 순간이었다. 사실 3년 전 이날이 올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있었지만 실제가 되니 정말 상상했던 기쁨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3년 전 이맘때는 첫째는 학교로 둘째는 어린이집으로 셋째는 가정보육 집으로 보냈었다. 둘째와 셋째를 같은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어서(자리가 없었다.) 셋을 뿔뿔이 흩어놓아야 했는데, 흩어놓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힌다. 그런데 더 큰 어려움은 세 군대를 돌아다니면서 모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그 과정이었다. 매일 그 일을 반복하면 익숙해지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모두가 같은 학교와 그 학교에 붙어 있는 병설유치원을 다니게 되는 날이 온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걸 조금씩 실천해나갔다.


둘째가 첫째가 다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을 다니는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유치원을 입학했는데 그 유치원보다 조금 더 큰 학교에 오빠가 있다는 사실이 부모에게는 상당한 안정감을 줬다. 그리고 가끔 점심시간에 서로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그냥 상당히 특권을 누리고 있는 부모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런데 이제 셋째가 유치원을 갈 나이가 되었다. 둘째는 병설유치원을 졸업하고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막내가 드디어 그 병설유치원을 가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입학원서를 접수하는데 뭔가 아이들을 다 키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이제는 한 군데만 데려다주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상당히 자유로운 존재로 극부상 시키는 듯했다.


2021년이 되면, 첫째와 둘째, 셋째가 모두 같은 학교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유치원을 다닌다. 그냥 이 사실이 왜 이렇게 뿌듯한지 모르겠다. 그동안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러한 힘듬을 잘 이겨내고 살아왔고 그 살아냄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듯하다. 그저 건강하게 아이들이 다 같이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지금 나에게는 엄청난 보상이다. 그리고 그 보상에는 소소하지만 아이들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시간적 여유도 같이 포함된다.


자유란 사실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삶은 항상 무언가로 속박되어 있는데 그 속박은 영원하지 않고 조금씩 자유의 영역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그 자유의 영역에는 또 다른 속박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의 반복, 그리고 그 반복 사이에 있는 잠깐의 자유로운 느낌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영역의 속박과 자유로의 여정으로 항해하는 것. 그런 것이 인생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상당히 많은 게 희생이 되고 그 희생에는 속박의 영역도 크지만, 그 속박 속에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면 경험하지 못하는 자유의 영역도 크다는 사실을 부모가 되어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또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길임이 분명한데 어떤 이들은 이걸 자유로의 여행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그저 속박 속에 갇혀있는 모습만 보는 것 같다. 자유와 속박의 경계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 값진 보물은 역시나 지금 시대에 조금은 무모하게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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