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일탈

by 김씨네가족

현실을 잠깐 벗어나는 주부의 일탈


아침은 대부분 분주하지만 오늘의 분주함은 기분 좋은 분주함이었다. 보통은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남은 일을 정리하고 커피숍으로 출근을 하거나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 정말 오랜만에 미팅이 있어서 평소와 다르게 옷도 이것저것 바꿔서 입어보면서 아침의 분주함은 더해졌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도 하고 이번에 해야 할 일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바쁘게 움직이는 회사원들, 그리고 그것이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법인카드의 점심 파워, 물론 그저 먹는 건 아님이 분명하다. 조금 더 나의 노동력을 더 써달라는 암묵적인 뇌물이겠지? 그래, 뇌물이어도 좋다. 주부가 같은 회사원들과 유사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저 기분 좋을 뿐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조금 전문적인 분야의 회의들. 그것 역시 내가 프로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대화에 여전히 막힘과 어려움이 없는걸 보고서 스스로 그냥 뿌듯해한다. 아마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그룹에 속해서 일반인이 알아듣기 힘든 대화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그래도 내가 왠지 이러한 그룹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내 몸과 정신에 긴장을 부여했다. 그러고 나니 뭔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런 것 때문에 경력단절을 당한 많은 주부들이 재기를 꿈꾸는구나 라고 동질감을 어느 정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잠깐의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간직한 채 현실이라는 조금은 피하고 싶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일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름 있는 회사의 직급 높은 분과의 만남. 그러한 만남이 주는 의미를 뒤로하고 조금 더 지금 처한 현실을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갈지의 고민이 머릿속에 조금씩 둥지를 트기 시작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이상이고, 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삶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금 철학적인 질문들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질문해본다.



다시 현실로


그런데, 그런 질문들은 차를 타고 아이들을 픽업하는 순간 금세 잊어버린다. 그리고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금세 사라진다. 그저 나를 반기는 아이들의 웃음에, 그리고 여전히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한 그들의 요구에 응답해주면서,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간다.


아이들을 키우기 힘든 시대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아이 키우기가 힘든 게 아니라 사실 인생이라는 그것 자체가 원래 힘든 여정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고 하여 인생이 더 쉬워지는 게 아니라면 조금 더 그 문제를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갓난아기가 태어나고 모유나 분유를 먹다가 이유식으로 바뀌고 그리고 조금씩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커간다. 걷기도 하고 말도 하게 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조금 깊이 있는 대화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지만 다른 존재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고, 인생이 어떻게 자라고 성숙하게 되는지를 가장 자세히 옆에서 볼 수가 있다. 부모가 아이들을 양육하고 키운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생전 처음 배우는 게 부모의 특권인 듯하다. 즉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제2의 인생을 배우는 일이다.


나는 요즘 이 재미에 아이들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 조금 더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게 되고 때로는 그 생각의 깊이에 놀라기도 하고, 나보다 더 남들을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을 보고 배우기도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가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나의 때 묻은 생각과 정신들을 다시금 정결하게 하는 작업도 가끔 한다.


누구나 환상을 그리워하고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 현실을 벗어나서 기대했던 환상이 현실이 되면 그 환상은 역시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인생에 환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 현실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가 매일의 반복적이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이 환상적인 순간으로 변하기도 하고 절망적인 순간으로 변하기도 할 뿐이다. 가끔의 이벤트가 평범한 삶에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윤활유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은 되지 못한다.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은 처해 있는 현실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오늘도 그저 묵묵히 내 무릎을 일으킬 자그마한 힘을 부여해 주는 의식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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