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자기가 집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작은 관심과 배려가 주부를 살게 한다.

by 김씨네가족

분주한 아침을 무사히 잘 마치고 현관문 앞에서 아내가 딸에게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발 누가 정리했어?"

"아빠가 했어"


누군가 전날 신발을 정리해놓아서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러한 것을 그저 평범하게 지나치지 않고 딸에게 물어본 사실이 오늘 아침 상당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매번 내가 신발정리를 했다면 질문을 하지 않았을 터이고, 또 신발정리를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질문은 없었다. 우리 집 신발정리는 주로 막내가 담당했는데, 책임감 있게 일을 할만한 나이는 아니기에 내가 종종 그 일을 한다. 집안일 중에서 반드시 해야 될 영역을 정하기란 참 어렵지만, 현관문 앞의 신발정리는 반드시 해야 할 영역이 아닐 수 있다. 신발이 어떻게 놓여있든지 그거 자체가 집안을 상당히 어지럽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발이 항상 가지런히 놓여 있다면 그렇지 않은 상황 자체가 사실 집안이 상당히 어지러워져 있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우리 집은 현관문 앞은 그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을 때도 가끔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이 조금 더 많은 그런 집이다.


딸의 답변에 아내가 아침에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다.

"이젠 자기가 집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뭔가 상당한 칭찬인 듯하면서도, 왠지 집안에 갇혀야 될 것 같은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말이었다. 초보주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집안을 스스로도 잘 관리하고 정돈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집안일은 나에게 벅차고 매번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여전히 깜깜한 동굴 속을 지나가는 듯 하지만 아내의 작은 칭찬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물음 한마디가 그동안의 보이지 않는 고생들에 대한 보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주부의 일은 정말 가족이 함께 마음을 같이 하고 일을 진심으로 같이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스스로의 인정이든, 타인의 인정이든, 어떤 집단의 인정이든 소속감을 원한다. 주부 역시 분명한 소속감이 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조금은 작은 집단 같지만 결코 그 어떤 집단보다도 깊이 있고 상당히 힘이 있을 수 있는 소속감이 있다. 그런데 그 소속감 속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느낌이 들거나, 혼자만 이 집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좌절감과 우울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주부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외부의 인정보다는 내부의 인정이 메말라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칭찬과 인정이 필요하지만 가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집안일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가족 구성원이 작은 언급을 해준다면 그건 상당히 주부에게 큰 만족감과 성취감 그리고 스스로에게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러한 칭찬과 격려가 결국 더 집안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렇게 성취감과 즐거움으로 해낸 집안일들은 가족 구성원에게 그 어디에서도 줄 수 없는 만족감과 평온함, 쉼을 선사해 준다.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건 자본주의 시스템이지만, 유일하게 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게 이러한 작은 배려와 가족 간의 관심으로 인한 만족감, 안정감 같은 것 아닐까?


5초 정도 되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서 정리한 신발정리가 때로는 지루하면서 상당히 버거울 수 있는 집안일을 다시 해낼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선사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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