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본주의를 온전히 좋아할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앞, 뒤, 위 전체를 드리우고 있다.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연기력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 누가 얼마나 잘 연기하는지가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 물론 그 평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평가다. 그 평가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생존하지 못한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역시 일종의 연기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그 사람의 근원전익 평가를 완전히 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좋은 평가 기준이 된다. 그나마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고 그 구분에 의해서 여러 계층을 만들어 내기 쉽다. 만들어진 계층구조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잘 운영하고 유지하기에 꽤나 좋은 방편이 된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를 붙이고 포장하고 싶지만, 결론적으로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첫 번째 목적은 역시나 돈이다. 돈을 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물론 자원봉사나 다른 차원의 일은 여기서 제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좀 멋진 가면을 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력은 꽤나 연기에 능수능란하다. 원하지 않는 연봉협상에도 나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진 못한다. 그렇게 진실되게 드러내다가는 그나마 부족하지만 협상된 연봉마저도 못 받게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 시스템에서의 생존 자체가 비상사태가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관계들은 굉장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굉장히 친한 듯하고 때로는 우리들의 속마음까지도 과감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가정사라든지 나의 취미라든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웃으면서까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속는다. 아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있구나.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또는 직업을 변경하거나 부서를 옮기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면 더 이상의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그때쯤 되어서야 진정한 관계가 아니었고 그저 서로 연기하는 사이였구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우리는 서로 돈을 벌기 위해서 만났고 그 만남 위에서 그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연기를 한 것뿐이었음을 깨닫는다.
때로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면서도 그러한 연기를 하지 않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여전히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조금 더 진실되기를 원한다. 일적인 관계에서도 일보다 사람이 먼저인 이들을 정말 가끔 발견한다. 물론 그들 중에 일부는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서 승진과 사회에서의 인정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신들의 좋았던 성향을 다시금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추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바꾼 현실이 안타깝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비판 또한 할 수 없다. 비판을 한다면 그 누구에 의해서 통치되지 않는 그저 스스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욕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그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건 인간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그리고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고 있는 그 무엇일 뿐이지.. 그걸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이끌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연기자가 될지, 방랑자, 혹은 반항자가 될지는 그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욕해봤자 손해는 나 자신일 뿐이다. 그나마 적정한 수준으로 연기력을 올릴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내 책임만 있을 뿐이다.
뭐, 어차피 인생이 작은 연극, 영화와도 같은데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연기하면서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까?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한다면, 나의 인간성은 언제나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연기자들이 악역을 맡더라도 그의 인간성과는 상관이 없듯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연기력이 나의 인간성까지도 자본주의에 물들었다고 말하는 자들은, 그 대안이라도 가지고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