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보건사회부 대한가족계획협회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도 본인의 생각을 잘 따르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거나 주변에서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하는 대로 대부분 행동한다.
그 결과를 80년대생인 나는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나의 부모세대는 위의 포스트에 완전히 세뇌당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의 내 친구들 또는 형, 누나, 동생들 대부분 형제, 자매가 2 명인 건 어찌 된 일일까?
강요당한다고 사람은 행동을 할까?
아니면,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서 사람은 행동에 옮길까?
강요보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사람의 행동을 쉽게 결정짓는 것 같다.
듣기로는, 둘만 낳았다고 어떠한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 것은 없다.
정관수술을 무료로 지원해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지원이라고 하기에는 현재의 육아정책과 너무 비교된다.
둘을 낳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에서
한 명이라도 낳아준다면 고마워하는 정부로 입장이 바뀌었다.
둘을 낳는다면 정말 잘한 것이고
셋이면 앞, 뒤 따지지 않고 애국자로 불린다.
나의 행동을 보면 우리나라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우리를 애국자로 부른다. 기막힌 현실이다.
사실 목표는 넷이었는데
셋을 낳고 나니 이제야 현실감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은 나의 종족(?)을 번식시킬 수 없는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리는 정관수술을 감행해야 했었다.
수술은 금방 끝나고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뭐랄까..
본능에서 외치는 "너는 이제 더 이상 자손을 번식시킬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된 거야!'
라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닫기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한때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한세대도 바뀌기 전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미덕인 시대로 바뀐 건 왜일까?
다가올 세대에선 아이를 얼마나 낳는 것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일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건
한 가족만이 감당하기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 셋을 키워보니
현재의 한국 시스템에서 일반적인 직장을 가지고 아이 셋을 키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다양한 어려움을 겪지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되는 일이다.
세명을 키울 수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이고
또한 사회가 아직까지 아이 셋을 키우기에 어려운 환경이긴 하다.
그래도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보면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시대에서 요구하는 가치가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가치 있는 결정은 본인이 어떠한 가치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경험해 보지 못하면 그 세계를 알 수 없듯이
아이 셋을 키우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