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카페는 공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 괜히 그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내가 외국에 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행을 즐기는 그들은 지금 이곳에서 어떤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까. 낯선 설렘이 가득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물게 된 이곳에서의 순간이 조금 더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곤 한다.
이른 시간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국인 여자 둘이 가게로 들어왔다. 다행히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분들이었다. (생각보다 영어를 하지 못하고 본인 나라의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번역기를 꺼내야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중 한 사람이 기억에 남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까무잡잡한 피부, 시원스럽게 웃는 표정까지 너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따뜻한 라테를 시키며 빵이 언제 나오는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는 친절과 밝음이 꾹꾹 담겨있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앉아있던 그녀는 빵이 거의 다 나오자 몇 가지 빵을 골라왔고 포장을 해달라고 했다. 우리가 정성스레 포장을 하려 하자 그녀는 밝게 웃으며 비행기 안에서 먹을 거라 그냥 (비닐을 가리키며) 여기에 담아주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자 호주에서 왔다고 했다. 빵을 건네주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름다워요"라는 말을 하자 더 방긋 웃어 보이며 수줍게 고맙다고 말하는 얼굴이 참 예뻤다.
함께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나도 언제나 타인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너무 헤실헤실 거리는 내가 좀 바보 같았나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그녀를 보니 이런 밝음이라면 더 많이 나눠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난 줄 알았던 그녀가 다시 나에게 다가와 고맙다며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나를? 그러자 응!! 이라며 웃는 얼굴에 부끄러웠지만 응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내 사진을 찍어준 그녀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같이 고맙다고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흘러가는 수많은 우연들 속에 점을 찍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녀를 만난 그 순간이 그저 지나칠 수 있던 우연 같은 하루에 새겨진 인연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그녀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 속에 남겨진 내가 있겠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라는 사람이 새겨진 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모두가 좋을 수 없겠지만 이왕이면 좀 더 좋은 기억으로 새겨진 내가 많길. 순간을 붙잡은 인연도 새삼 신기하고 소중한데 이보다 더 많은 순간들이 쌓인 인연은 그 무게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내 곁에 인연으로 존재하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이 참 감사하고 더욱 소중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