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되어서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바뀌였다. 매 학년 오를 때마다 반친구들이 다른 반과 섞여서 반이 재배정이 되었고, 담임선생님도 바뀌였다. 1년 담임제라서 그렇다.
이번 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자선생님이셨다.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엄격하셨던 분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고 나서기를 그닥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도 용케 나를 아이들은 찾아내어 밖으로 끌어냈다.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과 어울려서 고무줄 놀이랑, 말뚝박기, 구슬치기, 벽돌치기 등등 다양한 놀이를 했다. 아! 오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참 재미있게 밖에서, 작은 운동장 같은 뒷동 공간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수현아,밖에서 벽돌치기 놀이하자!”
여자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섞여서 잘 놀았다. 전에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고무줄놀이를 했다면 오늘은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벽돌치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야아, 이번에 내가 한다!! 자자 비켜. 이얏!”
나는 발등에 올려 놓은 납작돌을 냅다 상대방의 세워 놓은 납작돌을 향해 발등에서 던졌다. 던저진 돌은 쑹 날라가서 목표한 돌에 정확히 쳐서 넘겼다. 환호성과 상대 남자아이의 탄식이 오갔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도 실패와 성공이 번갈아 가며 내 팀은 한 번의 공격의 기회를 더 가지며 재미있게 놀이를 했다.
나는 동글동글한 성격으로 무난했다. 여러 사람과 잘 어울렸다. 아이들의 고민상담도 잘 했다. 잘 들어주고 거기에 맞는 해결법을 알려주었다. 이러면서 내가 또 답답해 하기도 했다.
‘아니, 좀 실타래가 엉겼지만 이거 찬찬히 들여다보면 쉬운데 왜 못 풀어?’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났다.
어느 날, 내가 3학년이 되고 나서 중년의 남자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2학년 때부터 선생님이 곧잘 심부름을 시켰다. 곧잘 공부를 따라가고 잘 해서 공부하지 않아도도 된다 생각을 하신 걸까? 6학년 졸업할 때 까지 수업까지 제껴가며 –선생님이 제끼게 했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이날 서류철을 교무실 자신의 자리에 올려 놓으라고 해서 종이뭉치를 들고 교무실 있는 본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어린 나는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빨리했으나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도 빨라지며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속닥였다.
“내일부터 네가 암행어사가 되어 떠드는 아이들을 색출해.”
“에? 비밀 반장을 저보고 하라고요?”
“응, 잘 해.”
이 말과 함께 담임은 앞서 나가 사라졌다. 그는 교무실이 아니라 다른 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교무실에 올려 놓으라는 곳에 종이뭉치를 올려 놓고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겼다.
‘암행어사를 해서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까? 아이들의 공격이 장난 아니던데???으아.’
우리 반에서는 담임선생님 하도 시끄럽게 떠든다고 주범을 찾는다고 암행어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벌써 3명의 암행어사가 활동을 했다. 어떤 이는 조용히 넘어가고, 어떤 이는 아이들의 언제 떠들었냐며 공격을 당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2번이나 했고 마지막 암행어사 정체를 보였고 내가 적은 아이들의 공격을 당했다. 그러면서 나는 강해져감을 느꼈다. 억울하니까 막대응하고 있든 없든 하는 반론을 제기 해야했다. 한 아이가 자신은 떠들지 않았다 주장하는 걸 나는 심하게 몇시에 떠드는 걸 듣고 봐서 적었다고 하였다. 사실 이건 어떤 불이익을 주는 건 아니였다. 아니 점수를 매겼었나? 학습분위기를 잡기 위해 담임이 생각해 낸 제도였다. 이건 한 하기 계속 되었다. 이러다 내가 왕따를 당하겠다 싶었지만 역시.... 은따였다. 은근하게 따돌려졌다. 죄없는 자신을 지목했다는 이유로 은따가 되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나는 공부와 선생님 심부름, 그래도 같이 놀아주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흥! 따돌리 라지. 누가 무서울 줄 알고?’
이런 당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시킨 일인데 아이들에게 서로 따돌리며 학습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은따가 된 아이들은 암행어사를 했던 아이들이 곧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은따현상은 사라졌지만 지금 돌아보면 담임선생님의 방법은 잘못 된 거 같다. 1년 후에 다시 헤어질 아이들인데 그렇게 야박하게 서로를 감시하고 따돌리고 하며 스파이짓을 교활함을 가르친 거 같다. 공부도 좋지만 교활함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 한 걸까?
그 덕인지 나는 당돌하게 선생님에게 이 제도의 나쁜 점을 밝혔다. 이 모습에 다들 너도나도 발언을 해서 선생님이 시행했던 암행어사 제도를 파기시키는 일을 이끌었다. 다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지. 따돌리고 서로 의심하게 하고 공부도 그런 일에 신경 쓰여 제대로 못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제도를 파기하고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덜 떠들 것을 부탁했다. 아이들이니 얼마나 왈가닥에 목소리가 얼마나 크지 않을까?
어쩔 땐 선생님의 통제를 벗어나기도 하나보다. 어떤 반은 너무 시끄러워서 몇 번이고 다른 반 선생님도 찾아가서 조용히 시킬 수밖에 없었다.
2번이나 남자아이들에게 떠들지 않았다는 말에 여러 아이들에게 공격 당하고 내가 방어를 하는 사이 내 마음이 단단해져갔다. 3학년, 10살의 나는 점점 주장이 강한 아이로 탈바꿈해 가는 문을 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