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야 NAYA May 13. 2022

마블 영화는 더이상 히어로물이 아닌 판타지물이다.

현실에선 닥터 스트레인지인 내가 이세계에선 좀비?

MCU는 더이상 ‘지구를 지키는 우리의 히어로’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 우리가 모르는 멀티버스, 우리가 모르는 마법, 우리가 모르는 주문, 우리가 모르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2가 개봉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당연히 닥터-스티븐-스트레인지의 멋진 활약극이 주 장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난감했다. 이 영화의 장르를 뭐라고 규정해야 할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블이 그 자체로 장르다’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거라면 할 말이 없긴 하다. 이렇게 스케일이 큰 작품을 완성도 높게 풀어내는 것을 보며, 마블의 위엄을 분명 느끼긴 했으니. 그래도 새로운 재료를 섞어 만든 신메뉴라기 보다는, 온갖 재료가 뭉쳐져 있는 짬뽕탕 같다는 인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스포를 피하고 싶어서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었던 것 같다.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에 담겨있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시선을 6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이니, 영화 관람을 마친 분들께 적합할 내용일 듯 하다!



(1) 드라마 : 마블의 '금쪽이'가 되어버린 완다  

이번 영화는 정말 완다를 위한, 완다에 의한, 완다의 이야기였다


이 영화에 대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보고 가야한다’는 말이다. 맞다. 영화 제목에 ‘완다’를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 영화의 서사는 대부분의 비중을 완다에게 기대고 있다.                


사랑하는 비전을 잃은 슬픔으로 의도치 않게 가상의 현실을 만들고, 그 가상의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두 자녀를 만나고, 결국 모든 걸 빼앗긴 채 ‘스칼렛 위치’로 거듭난 완다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악역이 되어버린 것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인 만큼, 완다의 서사는 이 영화의 핵심 키이다.


개인적으로 ‘완다 비전’이 마블 최고의 아웃풋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완다가 이렇게까지 무자비한 악당이 되어버린 모습이 꽤 안타까웠다. 자신의 슬픔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에 자책하던 완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죄책감 없이 수십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빌런이 되어버렸다니.       


완다비전 속 완다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안타까움과 면죄부가 주어지지만, 이 영화 속 완다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질 수 없다. 아무리 그녀가 (결론적으로는) 전 우주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기 때문이다.


(2) 판타지 : 마블 히어로물 영업 종료합니다

돈 냄새가 강렬하게 나는 그래픽들의 향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건 완다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MCU 세계관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남을 듯 하다. 아이언맨이 타노스와 싸우러 우주로 나갔을 때부터 낌새가 보이긴 했다만, MCU는 더이상 ‘지구를 지키는 우리의 히어로’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 우리가 모르는 멀티버스, 우리가 모르는 마법, 우리가 모르는 주문, 우리가 모르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티버스 속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마블은 열심히 영화를 통해 자신들이 만든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명한다. 관객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긴 한다만 ‘뉴욕에 외계인이 쳐들어왔다’, ‘냉동인간이었던 캡틴 아메리카가 깨어났다’, ‘군수물품 만들던 천재 토니 스타크가 어벤져스가 되었다’와 같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던 내용을 접할 때와는 태도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블의 비현실 속의 현실적인 포인트에 열광하는 편이었다. 아이언맨 수트가 탄생하자 정부에서는 이를 뺏으려 하고, 어벤져스가 창설되자 각국 정부가 규제 방안을 논의하고, 스파이더맨은 대학 진학을 걱정하고, 세계 평화를 위한 견해 차이로 어벤져스 내에 인간적인 충돌이 발생하고…   


슈퍼 히어로라는 비현실적인 장르가 마치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온 듯 생생하게 풀어내는 방식이, 지구 어딘가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전개가 좋았다. 하지만 멀티버스로 스토리 영역을 확장하면서부터 이런 ‘현실적인 전개’는 더이상 마블 영화에서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게 된 것으로 보여 아쉬웠다.


여튼, 더이상 MCU에서 ‘친근하지만 든든한 슈퍼 히어로’는 보기 힘들게 된 것 같다. 대신 광할한 우주를 넘나드는 초자연적인 존재들만 있을 뿐. 얼마전 영화 아바타2의 예고편이 업로드 되었다. 아이언맨 1, 2편이 개봉했던 시기가 아바타 1이 개봉했던 시기와 비슷한데, 그 때는 두 영화의 장르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아바타와 마블의 장르는 판타지물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비슷해진 듯 하다.



(3) 호러 : 호러가 섞여있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봐도봐도 적응안되는 쓰리 아이즈 스트레인지...


처음부터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무리 괴물의 눈이라고는 하지만 안구를 그대로 적출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바닥에 시체를 묻는 씬도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컨저링’처럼 사람을 놀라게 하는 류의 장면이 여럿 등장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감독이 워낙 호러 쪽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고, 이번 영화의 장르가 ‘호러’라는 이야기가 이미 있었다는 걸 듣고 할말이 없어지긴 했지만... 이를 전혀 모르고 간 덕분에 중간중간 심장을 여러번 쓸어내렸다. 공포 장르에 아주 취약한 분이라면, 이번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4) 좀비 : 워킹데드가 된 닥터 스트레인지

워킹데드 아닙니다. 닥터스트레인지 맞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꼽을 때 많은 분들이 이 장면을 꼽지 않을까 싶다.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가 드림워킹을 통해 지구에 남은 본인 시체에 빙의(=좀비로 변신)해서 완다와 대립하는 씬 말이다. 아메라카가 처음 지구에 올 때 그 세계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체와 함께 온 것이 단순 멀티버스를 증명하기 위한 용도라고 생각했는데, 좀비로 활용한다는 큰 그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벽돌로 묻은 땅에서 부패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신이 걸어나오는 장면이나, 영혼들을 끌어모아 망토로 제작하는 장면에서는 웃어야 하는건지 감탄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갑자기 좀비가 등장한 것이 이 영화의 장르에 혼선을 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것 같긴 하다만, 여튼 한계없는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ㅋㅋ)



(5) 음악 : 갑자기 분위기 말할 수 없는 비밀

티저 이미지 속 하프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피아노 대결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음악으로 진검승부를 벌이던 장면. 놀랍게도 이 영화에도 음악으로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명확히 말하자면, 음표로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음표로 공격을 하고, 오선지로 맞받아치고, 장조와 단조 선율을 넘나들고, 음표가 쌓이며 오케스트라 합주곡과 같은 공격이 가능해지고, 결정적인 한 방은 하프의 아름답고 미세한 멜로디로 완성되는..


이 장면을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이런 전투 장면을 기획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천재가 분명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가지가지한다..는 생각이었다. 평범한 전개에 이런 음악 전투가 나왔으면 아이디어가 기발한 최고의 명장면이라 외쳤을 것 같은데, 이미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가 용량이 초과되기 일보직전인 영화에서 희한한 전투장면이 나와서 피로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6) 로맨스 : 멀티버스를 건너 만난 크리스틴

자동반사적으로 어바웃타임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한국인이 맞습니다


이 영화는 크리스틴의 결혼식을 시작으로 전개가 진행된다. 물론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의 웨딩이라는 장면에서 눈물 한바가지 머금고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사랑하는 크리스틴을 놓친 스트레인지는 다른 멀티버스를 유랑하던 중 다른 세계의 크리스틴을 만나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결국 인커전의 위험으로 함께하지는 못하게 된다.   


멀티버스를 뛰어넘는 그들의 사랑이 이 영화에서 스트레인지가 갖는 유일한 서사(?)라는 점에서도 의미있고, 스트레인지와 크리스틴이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에게 얻은 상처를 또 다른 서로를 통해 치유한다는 점에서 멀티버스의 매력이 톡톡히 돋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웡을 만나면 꼭 공손하게 인사해주세요


드라마, 판타지, 좀비, 호러, 로맨스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장르다 잡다하게 섞여있던 닥터 스트레인지 2.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소서러 슈프림이 된 웡의 모습이나 멀티버스의 MZ세대(!) 아메리카의 티키타카를 보는 재미도 톡톡하게 녹아있다.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멀티버스 너머의 완다가 (우리가 아는 금쪽이) 완다의 고통을 위로하며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나즈막히 읊조리는 모습은 손에 꼽을 명장면이기도 했다. 다른 멀티버스를 살아가는 '나'들이 서로의 감정과 상황을 꿈을 통해 공유하는 만큼, 행복한 삶을 사는 완다도 아들을 잃은 완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설정이기에 더욱 깊은 여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점도 많은 멀티버스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대혼돈’의 멀티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126분의 러닝타임 속에서 여러 개의 멀티버스와 그 교집합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모두 담아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여튼, MCU가 지구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멀티버스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코어 팬들만 살아남도록 급행열차를 출발시켜버린 느낌이다. 꽉찬 내용 만큼이나 다소 버거운 전개를 보여준 영화, 어쩌면 혼돈을 넘어선 ‘대환장’의 멀티버스 스토리,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2월에 만난 6편의 작품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