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안드레아> 리뷰1
어떤 편지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대만 작가 룽잉타이와 그의 열여덟 살 아들 안드레아가 3년 동안 주고 받은 편지도 처음엔 오해에서 시작됐다.
나는 그 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도, 그냥 아는 것과도 다르다. 사랑은 때로 좋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할 때 핑곗거리가 되곤 한다. 사랑이 있으면 제대로 된 소통은 없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이 함정에 빠져들지 않으려 한다. 남자아이 안안(안드레아의 아명)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성장한 안드레아를 알아갈 수는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 p8. 열여덟 살 사람을 알다
사랑은 종종 사랑의 대상마저 가려버린다.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상대를 쉽게 정의하고 ‘안다’고 단정 짓는다. 상대의 모습을 이미 정의했으므로 더 이상 탐색하지 않고,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할 필요가 없어진다. 가끔 내 예상과 빗나가게 행동하면 ‘너 답지 않게 왜 이래’같은 말로 충고하기도 한다. 대화는 줄어간다. 상대의 말에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다. 어느샌가 내가 모르는 상대의 모습이, 고민이 점점 늘어간다. 어느 날이다. 사랑을 믿고 소통에 게을렀던 사람은 상대가 변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상대는 항상 변해가는 존재였다.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한 것은 사랑에 자만했던 사람이다. 룽잉타이의 오해도 ‘사랑’에서 비롯됐다.
룽잉타이도 그랬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자신과 대화하지 않고 차갑게 침묵하는 아들을 마주한다. 그런 아들 앞에서 그녀는 ‘모름’을 인정한다. 사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겸손히 아들에게 아니 그녀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열여덟 살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다른 가치관, 다른 세대,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모자는 편지를 쓰며 많이 부딪치기도 한다. 서로를 점점 알게 되는 시간인 동시에 서로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는 3년이라는 시간이 편지와 함께 차곡차곡 쌓인다.
그들의 편지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친하니까, 알고지낸 세월이 있으니까, 가족이니까 대화를 조금 하지 않아도, 힘든 게 없냐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새삼스레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괜찮음’이 쌓여 ‘괜찮지 않음’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안드레아, 이렇게 자란 엄마가 '불쌍하게' 생각되니? 그렇다면 네가 틀렸어. 언젠가 편지에도 썼는데. 가난 때문에 엄마는 물질적인 것들에 무딘 편이고 그것들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지만, 가난 때문에 오히려 약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 권위주의 통치 때문에 내 개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지만 권력의 본질에 대해 더 잘 인식하게 됐고, 그만큼 자유에 대한 신념도 더 굳건히 지켜올 수 있었지. 그래서 엄마가 더 용감해질 수 있었는지도 몰라. 자유를 잃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혹시 '견뎌야만 했던' 너의 과거가 있니? 그게 뭐지? 네가 성장한 나라는 일인당 평균소득이 3만 579달러나 되고, 너를 길러낸 사회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데다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지. 네 부모는 둘 다 박사학위가 있고 - 박사라는 게 100% 바보 놈팡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야 - 너는 열다섯 살도 되기 전에 이미 지구의 반을 거쳐온 '국제인'에 속해. 그야말로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응석받이로 길러진 현대판 왕자라 할 수 있지. 그런 네게 너만의 취향을 기르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엄마는 궁금하구나. 이처럼 지나치게 좋은 환경 덕택에 네가 뛰어난 미적 감각과 취향을 갖게 됐다면 그 반대로 그것이 너에게서 앗아간 것은 뭘까? 너희 세대는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가난한 사람'은 아니니?
– p. 202 아들, 넌 어느 병의 우유를 먼저 마실래?
20대 독자로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부모다. 20대를 살아봤다고 20대인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아직 살아보지 못한 50대의 삶을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의 세 글자 이름을 지우고 엄마, 아빠, 어른으로만 생각했고 ‘촌스럽다’, ‘꼰대다’, ‘느리다’ 몇 개의 단어로 부모 세대를 정의해버렸다. 나만큼이나 복잡했을 부모와 부모 세대를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를 나는 얼마나 많이 삭제하고 무시해 왔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시들해졌다면 ‘모른다’에서 시작하자. 짐작과 단정을 대신한 질문과 관심이 대화의 온도를 높일 것이다. ‘모른다’가 쌓여 ‘알아 간다’가 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