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별의 시간을 만난다

<눈으로 하는 작별> 리뷰 2

by 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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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든 이별을 만난다. 나는 언젠가 이별을 만날 것이다.

떠나는 이의 뒷모습에 마음이 아린 날이면 나는 이 책을 펼쳐볼 것이다.

이 책은 이별에 관한 책이다.


<눈으로 하는 작별>은 ‘목송’, ‘풍경’, ‘시간’ 이렇게 3장으로 구성되었다. ‘목송’은 낯선 단어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떠나는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보낸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첫 번째 에세이 ‘눈으로 하는 작별’이 곧 목송의 뜻이었다. 에세이 ’눈으로 하는 작별’은 룽잉타이가 아들 안드레아의 첫 등교를 함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물로 사라지던 아이의 뒷모습과 안드레아가 16살 때 교환학생으로 출국심사장을 들어가는 뒷모습, 21살이 된 아들이 그녀가 강의하는 대학에서 버스를 타고 떠나는 뒷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어서 초라한 트럭으로 교수인 딸을 데려다준다며 늘 미안해하시던 룽잉타이 아버지의 멀어지던 모습, 세월이 흘러 그 아버지의 관이 화장장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묘사하며 룽잉타이는 이렇게 글을 끝맺는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 p.19 눈으로 하는 작별


목송(目送)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 룽잉타이는 왜 건강하던 아버지, 호탕하던 어머니, 엄마바라기던 아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눈(目)으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그들과의 이별이 무언가를 잘못해서도, 서로가 싫어져서도 아닌 시간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거부하고 무시해도 피할 수 없는 이별은 시간을 타고 룽잉타이 앞에 선다.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는 목송을 택한다. 그러나 룽잉타이의 목송은 가만히 이별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룽잉타이는 멀어져가는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오랜 동창회에 함께 나가는 것이다. 아들과 편지를 쓰는 것이고 어머니를 산책시키며 어머니의 시선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 오기까지 이별의 대상과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룽잉타이의 목송, 눈으로 하는 작별이다.


‘남동생이 이쪽으로 건너왔고, 우리는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려는 ‘집’은 집배원이 찾기 쉽도록 우편번호가 매겨져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엄마의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며 웃고, 부엌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남편이 등뒤에서 두 눈을 가리며 누군지 맞혀보라고 농을 건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외친다. “등기 왔어요.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

엄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여행자다.’

– p.95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늙었고, 등이 굽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치아도 음식을 씹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 역시 당연한 일이다. 걷지도 못하신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곁에서 걷고, 함께 밥을 먹고, 부축해가면서 같이 앉고,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 모든 순간에, 한 번이라도 아버지에게 제대로 시선을 준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늙는다’는 말의 의미는 곧,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는 뜻일까?’

- p.306 눈


책을 덮으니 지금 내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이별이 보인다. 두려워 피하지 않고, 무겁게 슬퍼하지만 않고 나는 어떻게 헤어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라져가고, 멀어지고, 옅어져가는 이들 앞에 나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서고 싶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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