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한 번 끝내볼까요?
연휴 전 금요일, 반차를 내고 교수님을 뵙고 왔다. 문득 박사 논문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지금 시작하면 얼마가 걸리든 박사 과정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잘 모르겠으나 암튼 그랬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게 2021년 여름이었으니까 교수님께 다시 연락을 드리고 찾아뵙기까지 3년 반이 걸린 셈이다. 2019년 9월에 박사 과정을 시작해서 한 학기를 열심히 다니고 2020년 3월부터 코로나로 인해 100% 온라인 수업이 진행됐으니 학교에 다시 가보는 건 무려 5년 만이다. 학교를 너무 오래간만에 가보는 데다가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것도 어색한데 핸드폰까지 집에 두고 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수님은 교내에서 다른 보직도 맡고 있어 오후에는 행정관에 계신다고 하셨다. 나는 "환경대학원"의 위치만 알고 있는데 말이다. 지하철, 버스 노선까지는 출발 전 노트북으로 잘 확인했는데 행정관 위치 확인을 깜빡했다. 교내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행정관에 도착하는 데만도 20분이 걸렸다. 새삼 학교가 이렇게 컸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집에서 나의 모유를 기다리는 신생아가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있는 날에도 정확하게 5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유방이 딱딱해지기 시작하면 얼굴까지 열감이 오르면서 빠르게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운전해서 학교까지 왔다 갔다 하면 등학교에는 2시간. 강의를 듣는 데에는 3시간이 걸렸다. 오래간만에 학교에 들어서니 일주일에 3번씩, 매번 5시간을 투자해 수업을 듣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모두가 코로나로 힘들었고, 나 역시 그랬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 것은 내가 계속해서 박사 수업을 듣고, 박사를 수료하게 해 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제 나의 모유를 기다리던 신생아는 내가 조금 늦게 집에 가도 할머니나 아빠랑도 시간을 잘 보내는 한국 나이 7세 어린이가 되었지만. 내가 박사 논문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까지 주면서 말이다. 이게 제일 감사한 부분.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사 수료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굳이 논문까지 써야 하나? 이제 민간 기업으로 이직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박사 학위의 꿈을 접었었는데 왜 번뜩 올해 계획에 "박사 논문 시작"을 추가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늘 뭔가를 끝내지 못했다는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어쨌든 새해니까, 이런 기분이 든 것 자체는 좋은 거니까, 마음먹은 김에 교수님께 바로 연구계획서와 함께 뵙고 싶다는 인사를 전했다.
교수님은 나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나 역시 오래간만에 뵙는 교수님이 반갑게 느껴져서 놀랐다(?) 이런 학생도 다시 만나주시다니 감사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안부를 묻고, 한 시간 가까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교수님은 공부에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회사 일과 학술적인 영역은 다른 부분이 있는 거니까, 시간을 내서 하루에 2시간씩이라도 꾸준하게 기존 논문을 공부하며 엔드노트에 정리하고 트렌트를 파악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준비가 되면 소논문 2개를 저널지에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해 보자, 부동산 경제나 인공지능 등 부족한 부분의 지식을 더 쌓으면 좋겠다, 박사 논문은 깊이 파고들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니까 등등의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부터 논문을 준비하면 10년 안에는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지 않을까요?"
교수님의 진심이 담긴 조언 뒤에 매우 느리게 나아갈 예정인 나의 미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말까지 막 내뱉다니. 수년간의 사회생활로 다소 뻔뻔해진 나 자신이 보여 우습기도 했다.
"교수님, 저는 다 완벽하게 잘하고 싶지 않아요. 다 중간 정도만 하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도 키우고, 회사도 다니고, 논문까지 쓰려고 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다 잘할 순 없지 않을까요? 하는 교수님의 이야기에는 이렇게 답하며 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충족해야 하니까...."
맞다. 최소한의 기준. 그 기준은 충족해야겠지. 내 논문에 지도 교수님 이름이 나가고, 그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통과할 수 있는 게 박사 논문일 테니까. 박사 논문은 석사 논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
오래간만에 학교에도 가보고, 교수님을 뵙고 의미 있는 시간도 가지고, 서두르면 3년 안에 논문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마음도 내려놓았다. 지금 결심하면 5년 정도는 생각하며 느리게 천천히 가자는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편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하고 싶고, 빠르게 끝내고 싶어서 서두를 때 힘들어지는 부분도 있는 거니까. 1년 넘게 매일 글을 쓰며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으니까! 5년 그까짓 것 뭐!!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분명 얻어지는 것도 있을 거라 믿으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