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무도 가난한 집 큰딸로 태어나 부잣집에 시집와서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과, 그 이유는 장남인 우리 아빠가 서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가세가 기울어짐 등이었다.
이러한 내용도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것들이다. 나에게 우리 집은 항상 온화한 온실이었고 할머니는 나에게 그저이쁨과 사랑만 주었기에 아빠가 서자이며 그래서 할머니로부터 엄마가 시집살이를 살았다는 사실을난까맣게 몰랐다. 하긴 아빠도 결혼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을 나라고 알고 있었을 리 만무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 할머니는 유독 '아들'을 좋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동생은품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티 나게 손주, 손녀를 가리셨는데, 오로지 첫손녀인 나와삼촌 아들인 진욱이만 예뻐라 했지,그 외에는 눈에 안 차 하셨다. 아이들이손녀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나 빼곤 사촌들도 할머니에 대한 정이 없다.
할머니는 그 넓은 집 청소를 엄마에게 다 맡기셨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엄마를 괴롭혔다. 어린 나이에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던 나는 할머니의 앞잡이가 되어 엄마의 동선을 감시하는 레이더망이 되어주었다. 엄마가 장 보러 갔다가 어느 아낙네랑 얘기만 나누어도 뽀르르 할머니에게 일러 엄마를 욕 듣게 하였다.
내 기억에 엄마는 손재주가 좋았다. 생화 같은 장미도 만들어 냈었고, 천연염색도 했으며 입체적인 뜨개옷도 뚝딱 만들어내는 등 살림만 살기에는 아까운 손재주를 가졌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엄마는 참 잘 돌아다녔다. 뭘 배우든, 어딜 놀러 가든 발발발발거리고 다녔다. 나는 어린 나이에 엄마랑 함께 하고 싶은데 엄마는 항상 자기만의 스케줄로 바빴다. 그럴수록 더 심통이 나서 엄마 일기장까지 훔쳐 읽어가며 할머니에게 엄마 비밀을 낱낱이 고자질했다.
난 분명 부모가 두 분 다 계시지만 내 기억 속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크다. 내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엄마 아빠 보단 할머니 할아버지가곁에먼저였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조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도 부모가주는사랑에대한 갈증은 늘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는 엄마가 외출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변함없었다.
모르겠다. 난 이제 더 이상 엄마의 발발거림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꿈 많던 어린 소녀는 집이 가난해서 포기한게 많았을거다.어여쁜 처자가 되었을 땐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말 못 할 걱정과 근심으로 내내 살았을테고. 어쩌면 엄마가숨 쉴 방법으로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걸 선택한게 아닐까. 내가 살기 위해 끝없이 약에 취해 잠을 자는 것처럼.
회사에서 퇴근해 녹초가 된 엄마를 눕혀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다. 손을 보니 희고 곱디 고운 손이 온데간데없이 피부 홑겹 아래 지나는 핏줄과 패인 주름 그리고 세월에 스민 관절이 툭툭 매끄럽지 못하게 나와있다. '나도 손이 참 이쁜 아이였는데 엄마처럼 되려나?'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슬프기도 하고 엄마가 짠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