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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Dec 22. 2020

발바리 뻔여사

그건 엄마가 숨을 쉬는 방법이었어

나는 엄마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그냥 너무도 가난한 집 큰딸로 태어나 부잣집에 시집와서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과, 그 이유는 장남인 우리 아빠가 서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가세가 기울어짐 등이었다.


이러한 내용도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것들이다. 나에게 우리 집은 항상 온화한 온실이었고 할머니는 나에게 그저 이쁨과 사랑만 주었기에 아빠가 서자이며 그래서 할머니로부터 엄마가 시집살이를 살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하긴 아빠도 결혼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을 나라고 알고 있었을 리 만무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 할머니는 유독 '아들'을 좋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동생은 품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티 나게 손주, 손녀를 가리셨는데, 오로지 첫손녀인 나와 삼촌 아들인 진욱이만 예뻐라 했지, 그 외에는 눈에 안 차 하셨다. 아이들이 손녀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나 빼곤 사촌들도 할머니에 대한 정이 없다.


할머니는 그 넓은 집 청소를 엄마에게 다 맡기셨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엄마를 괴롭혔다. 어린 나이에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던 나는 할머니의 앞잡이가 되어 엄마의 동선을 감시하는 레이더망이 되어주었다. 엄마가 장 보러 갔다가 어느 아낙네랑 얘기만 나누어도 뽀르르 할머니에게 일러 엄마를 욕 듣게 하였다.


내 기억에 엄마는 손재주가 좋았다. 생화 같은 장미도 만들어 냈었고, 천연염색도 했으며 입체적인 뜨개옷도 뚝딱 만들어내는 등 살림만 살기에는 아까운 손재주를 가졌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엄마는 참 잘 돌아다녔다. 뭘 배우든, 어딜 놀러 가든 발발발발거리고 다녔다. 나는 어린 나이에 엄마랑 함께 하고 싶은데 엄마는 항상 자기만의 스케줄로 바빴다. 그럴수록 더 심통이 나서 엄마 일기장까지 훔쳐 읽어가며 할머니에게 엄마 비밀을 낱낱이 고자질했다.


분명 부모가 두 분 다 계시지만 내 기억 속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크다. 내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엄마 아빠 보단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먼저였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조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도 부모가 주는 사랑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는 엄마가 외출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변함없었다.


모르겠다. 난 이제 더 이상 엄마의 발발거림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꿈 많던 어린 녀는 집이 가난해서 포기한게 많았을거다. 어여쁜 처자가 되었을 땐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말 못 할 걱정과 근심으로 내내 살았을테고. 어쩌면 엄마가 숨 쉴 방법으로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걸 선택한게 아닐까. 내가 살기 위해 끝없이 약에 취해 잠을 자는 것처럼.


회사에서 퇴근해 녹초가 된 엄마를 눕혀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다. 손을 보니 희고 곱디 고운 손이 온데간데없이 피부 홑겹 아래 지나는 핏줄과 패인 주름 그리고 세월에 스민 관절이 툭툭 매끄럽지 못하게 나와있다. '나도 손이 참 이쁜 아이였는데 엄마처럼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슬프기도 하고 엄마가 짠해 보인다. 


엄마.

늘 부족한 딸이라 미안해요.

나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데

기대치만큼 실망감만 안겨드려서 미안해요.

그래도 전화위복이라고

살다 보면 좋은 날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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