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생활에서 ‘교육’처럼 많이 쓰이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란 말은 범상하게 말할 정도로 쉬운 용어가 아닐뿐더러 우리 형편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입에 발린 교육에 대해서는 교육 전문서가 산같이 쌓여 있으니 구태여 번거롭게 따로 글로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런 교육 말고 실제적으로 살 떨리게 부딪치는 우리의 교육을 말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교육은 이론이나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당면한 삶이다. 우선 교육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짐승이나 단순기능을 가르치는 훈련과 구분해야 할 일이다. 개를 길들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하며, 사람이라도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행동을 가르치는 곳은 훈련소라고 한다. 그런데 모두들 구분 없이 교육이라고 하니 짐승이나 사람의 행동과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다. 사람의 인간적인, 인격적인 도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이어야 비로소 교육이란 말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라도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인 기능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절도, 사기, 도박, 폭력- 에 교육이란 말은 당치 않다. 군사교육이 아니라 군사훈련이어야 옳다. ‘준법교육’은 있어도 ‘정치교육’은 없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정치는 바르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못지않게 성행하는 것이 학원이지만 막중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구절벽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니 ‘사교육’이라는 이름도 적절치 않을 것 같다. 멀쩡한 교육이란 이름을 가지고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공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막대한 세금과 교육비를 걷어 나라의 교육을 맡은 국가교육, 공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공교육이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언어의 속성이 그렇듯이 교육이라는 단어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본질과 개념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고정된 관점을 가지고 교육을 논의해 왔는데 이것이 우리 교육의 실패와 시행착오의 원인이 되었다. 흔히 서구의 교육을 들어 말하는 일이 많지만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우선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의 본질과 개념을 분명히 해야 지금의 교육을 바로 할 수 있다. 교육의 敎자는 매를 들고 애를 꿇어 앉혀놓은 모습이다. 회초리를 들고 학생을 꿇어앉힌 김홍도의 ‘서당’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의 개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학교의 校는 나무토막을 쌓아 놓은 모습이고, 본래는 ‘나무 우리로 사람을 가둔다’ ‘나무로 만든 교정틀로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출발하였다. 그렇다면 校는 형벌도구로서 敎보다도 더 강압적이다. 교육의 育자도 글자의 뜻으로 말하면 ‘아이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모양’이니 역시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글자로 풀이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은 엄격하고 강제적이라는 속성과 개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야만적이고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제정군주 시대의 사정은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고, 글자의 뜻이 그렇다면 좋건 싫건 적어도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의 본질과 개념이 그와 멀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교육에서 이제 상식이 되어버린 무조건적인 체벌금지는 서구의 Education의 본고장에서도 흔치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矯角殺牛(교각살우)는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말하는데 체벌을 막으려다 교육 자체를 그르치는 일이 그렇다. 교육적 체벌과 학교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자의 경계가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의 부정적 현상으로 하여 교육 전체를 그르쳐서는 안 될 것이다. 체벌인가, 아닌가를 놓고 성급한 양자택일을 하라기보다는 절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절충의 지혜는 연구소나 교육행정가의 책상머리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피와 땀의 열정에서 나온다. 체벌이 문제가 아니라 열정이 문제이다. 지금은 듣기조차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지만 ‘사랑의 매’라면 교육의 현장에서는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고, 감화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정교육의 실패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소수의 실패자 때문에 정상적인 다수의 인간 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구더기 무서워 아예 장을 담그지 않는 것이다. 학자, 정책 입안자나 관리자는 지시나 규정, 책임회피 수단으로만 체벌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일선 현장의 실정을 눈으로 보고, 귀담아듣고, 가슴으로 공감해야 한다.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서구 교육이론에만 매몰되어 우리 전통적인 교육을 망각한 데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론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은 열정과 땀으로 가르치는가, 이론과 인터넷으로 하는가? 모두들 경제만을 걱정하는데 망가진 경제는 한 정권의 노력으로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한번 실패한 교육은 한 세대의 노력으로도 회복이 어렵다. 그런데 교육이란 말은 난무하되 정작 우리의 교육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했거니와 교육이야말로 민족의 흥망이 걸린 관건이다. 교육이론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편으로 사십 년을 살았으니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거칠게나마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