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國籍)없는 교육

국적 없는 교육은 나라를 위험하게 한다.

by 김성수

인류의 꿈이 인류공영이라면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편협하고 분파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북으로 분단된 지 75년이 되다 보니 민족의 분단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이제는 ‘민족’이란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회피하고, 심지어는 아예 뿌리부터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각건대 지금의 북한을 동족이라고 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대국이고, 민족의 지상과제였던 통일을 생각하면 그에 따르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현 졍부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다. 더 신랄하게 생각하면 강대국에 끼어있는 우리 민족의 존립에 자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민족이란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민족’이란 강박관념만 벗어나면 한민족에 대한 긍지, 독립, 언어, 전통, 고유성- 그런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부 지식인들은 그동안 금기로 여겨졌던 ‘탈민족론’을 은근히 흘리기도 하고, 분단주의자들이나 역사의식이 허약한 젊은이들은 여기에 슬그머니 동조하거나 이론적인 힘을 얻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민족'이란 용어를 쓰기조차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 글의 제목도 원래는 '민족 없는 교육'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꼰대'로 찍히면 이 글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 두려웠다. 하기야 무정부주의가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민족이란 허구'라는 놀랄 만한 주장도 사상, 표현의 자유라면 탓할 바가 아니다.

이러다가는 한반도가 중국의 조선족 변방이건, 일본의 대륙 젖꼭지이건, 미국의 대중국 교두보가 되건 강자를 따라서 순응 복종해나간다면 그것이 훨씬 실속 있고 편안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남북긴장, 엄청난 국방비, 통일비용, 병역의무- 그런 걱정이 필요없다. 어차피 나만 편하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부담스러운 국가, 민족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계주의, 인류공영- 얼마나 숭고한 이상인가? 그러나 인류역사를 보면 이상처럼 개인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고, 모든 인간이 같이 잘 사는 인류공영이 이루어진 적도 없다. 그보다는 민족끼리 벌인 끊임없는 패권경쟁과 갈등과 분쟁의 역사라면 지금껏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역사가 분명하다. 찬란한 문명은 노예를 혹사시킨 결과이고, 강대국은 약탈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심지어 인류공영을 표방한 글로벌 종교마저도 민족이나 분파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형편에 우리만이 민족을 포기한다면 구차하게 목숨은 유지할지 몰라도 선조들이 피 흘려 지켜왔던 우리의 역사와 존재가치는 없어지고 만다.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편협한 국가주의나 천박한 정권논리는 분단고착에 빠지게 하여 오히려 민족을 위협하는 짓이다. 남북분단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든지, 북한을 공존하지 못할 주적으로 규정하여 대립하고, 북한과 평화통일을 모색하는 노력을 좌경,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더욱 위험하게 하고 있다. 아무리 북한이 가증스러운 집단이기는 하지만 대화마저 끊고 적대시한다면 전쟁을 벌이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인가? 아예 민족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거나 막대한 통일비용을 염려하여 북한을 포기하려는 사고는 국가존립마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편향된 이념교육이나 교육의 사대주의에 의한 맹목적인 교육의 책임이 크다. 민족주의를 편협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다면 민족주의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국적(國籍)있는 교육’은 당연히 우리 교육의 핵심이어야 옳다. '국적'이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존의식이다. 계제에 '민족허구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국적의식'마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인가?

근대화 이후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敎育의 개념과 본질을 제쳐두고 서구의 교육만을 전부라고 생각해왔다. 말로는 사회의 공익을 도모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교육의 목표로 내세우고서는 실제로는 개인의 이익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생각해 보면 홍익인간은 조물주의 인류 사랑의 이념이지, 현실적인 국민교육 이념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우주운행의 원리로 국기를 만든 태극기처럼 홍익인간은 그 지향이 너무 커서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허상에 가깝다. 태극기를 흔들고 홍익인간을 내세운 지 백 년이 되어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극동의 작은 분단국을 면치 못했고, 국민은 행복하지 못한 나라로 지목되고, 우리의 교육은 갈피를 잃은 지가 오래이다.

'국적 없는 교육'은 민족과 국가의 전통과 문화와 주체성을 망각하고, 서구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향락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정당화하여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였다. 서구에서는 그러한 교육사상으로 일찍이 선진의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육이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사회는 그것과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의 전통적 교육이 옳았다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전통은 서구와 같지 않았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개인주의가 아니라 사회의 이익이 우선이었으며, 내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였고,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도주의였으며, 절제와 극기로 향락주의를 경계하여 왔다. 이것이 주요한 우리의 교육내용이었는데 그것들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강대국일수록 편협한 이기적 국가주의, 국수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평화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허울이요, 패권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 미국과 중국이 앞장서서 입증하고 있다. 코앞에서 이들이 날뛰는 살벌한 세상에 우리 같은 처지로서 민족마저 지켜내지 못하면 나라의 존립 차체가 어렵게 된다. 강대국이 세계주의를 강조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하물며 우리의 의지였던 미국이 ‘미국주의’를 공공연하게 부르짖는 형편이라면 우리로서는 민족주의가 편협한 것이 아니라 비장한 생존수단이다. 정신을 ‘얼’이라 하면 민족정신이 없는 민족은 ‘얼 빠진 민족’이고, 민족정신이 없는 교육은 ‘얼빠진 교육’이다. 민족의 ‘얼’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생존해 온 바탕이다. 이스라엘이 이슬람의 한 가운데에서 굿굿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얼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불과 백여 년 전에 뼈저리게 겪어보지 않았는가? 북한이 딱하기 그지없지만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이라는 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처럼 주체사상으로 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대원군의 자살행위와 같지만 도둑을 막을 수 있는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현 정부가 꾸준히 중국에 유화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일면 이해도 되지만 중국은 더구나 믿을 만한 나라의 수준이 아니다. 북핵을 제거하지 못하고, 북한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아우성이지만 이런 판에 북한마저 주적으로 삼는다면 어리석은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늘어져 어부 좋은 일만 시키는 꼴과 다르지 않다.

‘국적 없는 교육’은 대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모든 사회 병폐의 근원이라면 우리 교육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것은 북한이나 과거 군사독재 시대와 같은 편협한 국가주의나 극우사상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교육의 기준은 권력이나 정권유지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민족의 장래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 소홀히 되고 있는 ‘국적 없는 교육’은 우리의 존립 자체를 위험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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