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내가 처음 제주여행을 한 지는 50년이 넘었다.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제주에서 캠핑여행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학생이면 무전여행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차비가 없다고 버티면 그냥 눈감아 주고, 태풍을 만나 발이 묶였어도 그럭저럭 버텨내고, 처음 만난 아주머니는 학생이 배고프면 되겠느냐고 음식을 나누어 주던 인정의 시대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제주도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렀으니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해에 찌들고, 미세먼지 황사에 신음하는 육지에 비하면 눈치 보아가며 마스크는 달고 살아도 아직 오염이 덜 된 제주도의 자연은 생기가 넘친다.
제주도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南國풍취이다. 야자나무, 귤나무를 비롯한 아열대림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미세먼지, 황사도 없는 푸르고 맑은 하늘을 늘 볼 수 있는 곳도 이제는 제주도밖에 없을 것 같다. 관광지 개발과 현대화로 50년 전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만 신비스런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도 여전하고, 정겨운 제주도 방언도 간간히 들을 수 있어 좋다.
이번 제주도 네 번째 여행에서야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섬이 우리의 국토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제주도로 해서 우리의 영토와 영해는 훨씬 넓어졌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남단이요, 태평양으로 나가는 관문이다. 제주도로 해서 우리는 아열대를 갖게 되었고, 세계적인 관광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기생화산이라는 보기 드문 자연유산이다. 하루 한 개의 오름을 오른다 해도 일 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제주방언은 이국적이면서도 소중한 우리 고유어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연한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가 우리 국토가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그전까지는 탐라국(耽羅國)이라는 독립국이었다. 대마도보다 더 먼 제주도가 우리 땅이 된 것은 천행이 아닐 수 없다. 대마도는 조선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복속하고 싶어했지만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고려가 아니라 조선왕조였다면 탐라를 받아들였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조선이 그럴 국량(局量)이 있었다면 제주도 주민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에서는 큐슈에서 제주도가 주먹만 하게 보인다고 했다. 만약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제주도에 접근했더라면 조선왕조는 제주도를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가 애써 차지한 울릉도를 지켜내기 어려워 공도(空島)정책으로 지배를 포기한 조선왕조가 제주도를 지켜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지금 독도를 가지고 속을 끓이고 있는 것도 무능했던 조선왕조의 책임이다. 정부가 포기한 울릉도와 독도에 무상출입하고 있던 일본인을 쫓아내고, 사재를 털어서 일본까지 가서 두 차례나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낸 안용복을 처형한 조선왕조였으니 그 어리석음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유구 왕자가 나라를 들어 망명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이를 능멸하고, 굴러들어 온 복덩어리 하멜을 종으로 부려먹다 놓쳐버린 조선왕조였다. 지금도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근대에 와서도 정부는 제주도민에 달갑지 않았다. 4.3사건은 제주도민한테는 엄청난 폭거요, 살육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억울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다가 지금에야 겨우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제주도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로 남아있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 보배로운 섬이 대한민국의 영토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소중하게 깨닫는데 70년이 걸렸으니 나는 부끄러운 국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에 와 보니 제주도를 단순히 관광이나 휴식의 공간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토의 소중함과 애국심을 길러주는 교육의 장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학생들에게 국토순례를 시켜 애국심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삼았는데 근래 그런 교육활동을 잘 볼 수 없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행사를 편협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북한과의 통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동족임을 부정하는 사람도 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조선왕조와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 하다. 북한을 적대국으로 삼으면서 중국과 일본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 딱한 일이다. 아예 이런저런 생각없이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단순히 현장학습이나 여행으로 그치지 말고, 국토를 순례하여 조국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특히 제주도를 여행할 때는 소중한 제주도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꼰대스러운 민족. 국가주의로 치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