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우리 모두가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公共의 적>이란 영화가 있었다. 거기에서 공공의 적이란 조폭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의 ’공공의 적‘은 조폭보다 더 고약한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들이다. 요즈음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대장동 사건도 어김없이 그들이 벌인 짓이다. 물론 이런 일들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그동안 있었던 관행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있지만 어느 후보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드러난 현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선진사회를 이룰 수 있다. 힘을 가지고 있던 공공의 적 치고 이런 부패 독직사건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 당연히 이런 후보는 제거되어야 마땅하지만 이런 저열한 정치적 술수에 또 다시 놀아난다면 우매한 국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쨌든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공공의 敵‘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公과 共은 한자도 다르고, 뜻도 다른데 두 글자의 의미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단순한 단어 의미의 혼란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가치관의 혼란에 있는 듯싶다.
다시 한번 公과 共의 字義를 짚어보면 公은 ‘공평하게 分-나누다’이고, 共은 여럿이 모인 ‘공동체, 협동체, 합동’이니 둘은 반의어에 가깝다. 그런데 公은 私적인 이익을 버리고 공익, 공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共은 ‘여럿’이라는 뜻도 있으니 유사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렇듯 公과 共이 반의어이면서도 유사어처럼 쓰이는 것은 ‘公共의 적’처럼 음이 같으면서 늘 같이 붙어다니며 쓰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종의 착각현상일 것이다. 公利는 公共의 이익이고, 共利는 共同의 이익이라면 둘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범위에 있어 公利가 더 넓고 크다. 공식적으로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전화라면 公衆(공중)전화이겠지만 여럿이 같이 사용하는 전화라면 共用(공용)전화가 더 정확한 이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公衆화장실보다는 共用화장실이 더 바른 이름이다. 전화사용이나 화장실 사용에 公私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혼란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公과 共의 구분의식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에 公과 共은 구분이 된다. 公用은 公的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共用은 共同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公人이란 말은 있어도 共人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개성적인 존재이므로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일 수 없기 때문이다. 公衆도덕이라고 해야지 共用도덕이라고 할 수 없다.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가치는 개인용, 공용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公正이라고 하고, 共正이라고 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정신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共同, 合同이라고 하고, 公同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같이 하는 것’과 ‘公的으로 같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共産主義, 共産黨은 글자로 보아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우리는 개인적 사고나 행위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본주의도 다분히 개인적인 사고이다. .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적 사고는 부(富)의 편중과 독점을 가져와 우리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란 개인적이나 사적이 아니라 公共的이고, 公正해야 한다. 공정이란 공산주의가 말하기 좋아하는 平等과는 같지 않다. 평등은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말이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인간이 똑같아진다면 인간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말도 불가능하다. 다 주인이 된다면 주인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民主主義의 이상은 共産主義의 平等과는 다른 公正이어야 한다. 공정이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개성과 능력에 따라 정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公益과 公利에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정이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가 아니다. 실현불가능한 '평등’이나 ‘국민이 모두 주인’이기를 외치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공평, 공정한 사회야말로 누구나 바라는 ‘公共의 꿈’이다.
골치 아픈 글자놀음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회에 우리 사회의 병폐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잊고 천박한 자본주의나 개인주의에 탐닉하는 것은 反인간적이며, 상대방과 공존을 인정하지 않고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反사회적이다. 개인주의나 물신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公의 적이요, 집단이기주의나 지역이기주의에 빠져있으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共의 적이다. 이들은 조폭이나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과 같이 역시 ‘公共의 敵’이 아닐까? 그렇다면 공공의 적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사적인 이익을 배격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여 公正을 추구하는 민주사회’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